Pravi
10평 남짓한 그다지 크지 않은 이 가게는 주로 에스프레소를 취급하는 커피 전문점이다.
주변의 화려한 CD레코드점이나 호프에 비하면 눈에 띄지도 않을뿐더러 주변에 스타벅스라는 최근 젊은이 사이에서 유행하는 커피 전문점이 있어 그다지 매상은 신통치 않은 편이다.
하지만 단골 이라 할 만한 사람은 꽤 많았는데 단골들에게 왜 이 가게에 오느냐고 물으면 대개 손가락 세 개를 치켜들며 말하곤 한다.
첫 번째는 커피 맛이다. Pravi의 커피는 이 가게 주인의 친척인 자메이카 교포가 직접 보내주는 블루 마운틴에다가 주인의 특별한 레시피로 브랜딩해서 파는데 시중에 나도는 이름만 블루 마운틴을 달고 있는 메이커와는 확연히 다르기에 입을 충족시켜준다.
두 번째는 친절한 주인이다. 손님이 들어오면 싱긋 웃는 미소도 일품이려니와 매일 오더라도 다른 자그마한 가게의 주인과는 다르게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그런 성품이라 들어오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게다가 매일 오는 손님한테는 한 달 단위로 마실 경우 싸게 해 준다는 장점-주로 손님들은 매일 같은 커피를 마시기에 - 또한 다른 가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 번째는 가게의 분위기이다. 보통의 체인점 커피 전문점은 젊은이들에 맞춰서 자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에 Pravi는 가게 인테리어 전체가 짙은 색 호두나무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오는 사람들에게 커피 향기와 더불어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딸랑~
오후 7시, 가게의 유리문에 달린 작은 종이 손님이 들어왔음을 알린다.
“어서 오세요.”
중년의 가게주인은 들어오는 손님을 보고는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리고 들어오는 손님 또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이내 당연하다는 듯 창가의 자리에 걸터앉는다.
들어오는 손님은 이십대 초반의 청년으로 매일 이 시간에 1년째 오는 단골이다. 딱히 키가 큰 것도, 잘 생긴 것도 아닌 다소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이었다.
“춥죠?”
가게 주인은 웃으며 따뜻한 물을 한 잔 가져다준다. 1월의 추위에 손이라도 녹이라는 뜻이리라. 청년도 그 마음을 느꼈는지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따뜻한 유리컵에 언 손을 녹인다.
드르르륵
요란하게 에스프레소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는 주인이 커피와 각설탕을 가져다준다.
원래는 손님이 가져가야 하지만 이 청년은 항상 가게에 들어 오자마자부터 멍하게 밖을 쳐다보고 있기에 뭔가 사연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주인이 세심한 배려를 하는 것이다.
청년은 평소처럼 각설탕 종이를 뜯어 두 개 중 하나를 에스프레소에 넣고는 한 손으로 커피를 저으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는 멍하니 밖을 쳐다보고 있다.
이렇게 30분. 평소라면 청년은 커피를 다 마시고 가게를 나갈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청년은 가게를 나가지 않고 주인에게 하나 더 부탁을 한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에스프레소 한잔 더 부탁해도 될까요? 돈은 따로 내도록 하지요.”
“아니요. 뭐. 하루정도야 괜찮지요. 서비스 해 드리겠습니다.”
주인은 흔쾌히 웃으며 다시 에스프레소 기계를 돌린다.
드르륵
주인은 에스프레소를 만들고는 무슨 생각인지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담는다.
“이건 서비습니다.”
“감사합니다.”
가게 주인의 말에 청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뭔 일 있었냐는 듯이 각설탕 하나를 넣고는 저으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다.
그리고 또 30분이 흐르고 에스프레소에 케이크까지 다 먹은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안녕히 가십시오.”
가게 주인은 밖으로 나가려는 청년에게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맛있는 커피 정말 감사합니다.”
청년의 말에 주인은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다.
“이제 오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네. 내일 군에 입대합니다.”
“예……. 정말 아쉽게 됐네요. 그럼 휴가 나오시면 언제라도 들리십시오. 그때는 서비스 확실히 해 드릴 테니깐 요.”
주인의 말에 청년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말한다.
“저기……. 아저씨는 5년 전, 한 중학생 커플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네?”
청년이 갑자기 꺼낸 말에 주인은 반문했다. 가게 단골 중 세상 이야기나 신세 얘기나 하던 사람이 꽤 많았고 가게 주인은 충실하게 상담역에 응했지만 이 청년이 먼저 입을 연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요. 기억 못하시면 됐습니다. 약속을 했는데……. 완벽하게 차였나 보군요. 후후후.”
청년은 나지막하게 웃고는 가게 문을 열었다.
딸랑
가게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가 싶더니 차가운 바깥바람이 들어왔고 이내 바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