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새벽까지 닦은 전투화를 보았다. 밤에 닦은 터라 광이 얼마나 번쩍이는 지 알 도리가 없었다. 허탈하다. 동기들은 광 내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1시간을 할여한 나의 구두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내 옆에 있는 동기의 구두보다는 나쁠 게 없다. 한참 잘 닦다가 골어떨어지더만. 그 녀석은 짝광이었다.
밤 늦게 까지 동기와 구두를 닦으며 희망으로 부푼 이야기를 나누고 잤다. 그러나 피곤하지 않다. 물론 나의 첫번째 휴가 전야보다 떨리고 설레진 않았지만, 내 가슴 속 정확한 곳까지 엄청난 의욕을 장전시키기에 1박 2일이란 기간이 결코 아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집합하는 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줄이야. 하품도 나지 않는다. 그다지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웃통을 단숨에 벗어던져도 화가 나지 않았다. 이게 어제와 확연한 차이다.
희미한 전투복의 주름을 살리고, 계급장이 정확하게 내 코 위에서 번쩍일 수 있도록 전투모를 고쳐 쓴다. 신발끈도 다시 매고 바지 밑도 반듯하게 만다. 버스가 온다. 역까지 바래다 줄 버스. 단숨에 오른다. 창문은 시시각각 변한다. 한편의 영화를 보듯 나는 그것을 즐긴다.
표를 받고 친구 놈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회가 힘들다는 게 뭔가. 녀석들의 젊음은 꽁꽁 언 경기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돌이켜 보니 아쉽다. 왜 함께 있을 때 더욱 더 거침없이 젊음을 표출하지 못 했는지. 세월이 지나고 보니 옛날이 퍽 아쉽다. 빌어먹을 기차. 승차 후 도착 시간은 3시간. 그간 멈추고 가기를 반복. 지루하고 불편하다. 그렇다고 쉽게 자자니 계급장과 군복이 불편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늦잠이 곯아떨어지게 만들었다. 입술이 가려워 일어났다. 침이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입을 해 벌리고 있었을 내 모습을 생각하니 부끄럽다.
옆 좌석에 앉은 말끔한 사나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X사단 몇 연대에 근무하십니까?"
팔뚝에 박힌 부대 마크를 본 모양이다.
"아직 연대배치를 보고 받지 못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n연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부대 마크를 보니 같은 사단이고 해서 한번 물어 봤습니다."
나는 말없이 웃었다.
도착했다. 고향 땅에 첫발을 내 디뎠다. 디딜 때의 충격이 머리카라 끝까지 전해 진다. 내게 말 건 사나이가 나에게 웃음 짓고 인사했다. 나도 인사했다.
'기억 남을 진 모르겠지만, 우연찮게 만나시면 아는 척이라도 해 주십시오.'
대사가 뒤늦게 생각났지만 사나이, 아니 장교님은 어디론가 떠나있었다. 따뜻한 남쪽나라. 나의 어설픈 전투화 광, 희미한 전투복 주름, 작게 빛나는 계급장. 이른 온기 때문에 그런지 생각보다 근사해지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