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회 시간이 점점 다가올 때마다 작은 떨림이 큰 진동으로 바뀌는 걸 느꼈다. 기다렸다. 3개월의 고통을 인내하며 동시에 갈망한 내 안의 작은 것들. 우리는 그것을 열매가 칭하기도 한다. 그 열매는 작지만 너무나 달콤하다. 가족을 뵙고 보니 그다지 많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서 시간이 흘러갔으면 한다. 차에 올라탔다. 이제야 정말 기분이 좋다. 이 기분은 단순한 웃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과 탈출감으로 충만했다. 집문을 열었다. 정겨운 집 냄새가 날 황홀하게 했다. 그 어떤 꽃 향기보다 향기롭다. 불을 켜자 한동안 잊었던 광경이 내 눈 앞에 기다리고 있다. 티비도 켜보고 컴퓨터도 켜 본다. 그럴 때마다 신비로움이 자연스레 발산된다. 친구와 대화를 한다. 정말 친한 녀석이다. 그 녀석의 타이핑 하나하나가 반갑다.
늦잠을 잤다. 찜찜하기도 하고 동시에 상쾌하기도 했다. 온천으로 떠났다. 때가 너무 많이 나온다. 손목에 가득 힘을 주어 때를 벗겨 낼 때마다 지난 날의 훈련과 교육과정, 고통, 억압의 시간도 동시에 나가 떨어지는 듯 하다. 내 어릴적 동네에서 아버지와 회식을 했다. 사랑니가 지끈거린 후로 나는 입맛을 잃었다. 하지만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도 좋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녀석들은 벌써 모여 있었다. 나의 걸음은 사뭇 빠르다. 친구를 보자 마자 환호성이 나왔다. 친구에게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맥이 빠진다. 나도 할말이 없어진다. 그것은 뭘까? 내 마음 속 한 부분에 차지하는 작은 공허함 때문일까? 모르겠다.
아침 일찍 집으로 갔다. 친구들과 밤을 새고 보니 머리가 아프다. 나의 허름한 옷이 밉다. 친구가 선물로 준 작은 상자를 든다. 아버지가 날 데리러 왔다. 아버지는 한없이 나에게 큰 사랑만을 주신다. 돌아오자마자 나는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다. 이 공허함은 그 무엇으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어느 소설 속 주인공의 마지막 장면처럼 나는 날개를 달고 싶었다. 그냥 미친듯이 떨어지거나 혹은 날고 싶었다. 나는 그저 침전하고 있는 걸까? 사랑니가 계속 신경 쓰인다.
10시에 부대에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 신경 쓰였는데 하고 보니 속이 시원하다. 사랑니가 아파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사랑니 때문에 나의 휴가가 이토록 암담해 지는 걸까? 노래를 듣는다. 작은 위로를 받고 싶었다. 치과에 갔다. 아는 분들이라 반갑다. 마취 후 파열음이 났다. 순식간에 사랑니는 날 떠나 있었다. 내가 마취를 받았다는 것 조차 몰랐을 정도로 사랑니 뽑는 건 그다지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프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아프다. 그래도 어느 소설 속 주인공이 탄 택시처럼 아버지의 차는 갈팡질팡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침대에 서둘러 누었다. 머리도 아프다. 잠들고 싶다. 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다. 내 마음이 언제부터 왜 이렇게 유약해졌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주신 미역국을 맛있게 먹고 보니 그래도 기분은 좋다. 나는 옛 시절을 가끔 떠올린다. 동시에 내가 동경한 것들도. 나는 그것들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조율되지 않은 기타를 흘쩍 본다. Rainbow의 Catch The Rainbow가 강렬하게 울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