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08.
" 자자.... 잘못했어 재후야!"
달수는 처량하게 재후의 바짓 가랑이를 붙잡으며 매달렸다. 그 때문에 바지에
피가 묻긴 했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쓸 여력이 있을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펑펑 울어 재낀다. 친구의 사정에 혀 끝이 씁쓸해지는 재후였다.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낸다. 그런데 이 때 울리는 목소리. 휴대폰에 녹음된 멜로디였다.
그런데 하필 울리는 것도,
" 자기야~ 전화 받어 "
스윽. 뻘쭘하게 고개를 들어 재후를 올려다 보았고 재후도 담배를 입에
문 채 달수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잠시 정적. 달수의 품 안에선
앙탈스런 여성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전화나 받으라 보챈다. 일단 전화를
받고 보는 달수. 사실 눈가에 눈물 자국은 전혀 없었다.
" 네, 오달수입니다. 예? 아아."
지저분한 달수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대체 무슨 통화길래 이러는 걸까?
담배를 입에 문 재후도 솔깃한 듯 이리저리 기웃하며 통화 내용을 들어보려
했지만 헛수고. 결국 통화가 모두 끝난 뒤 물어보려 했는데 먼저 말을 꺼내는
달수였다.
환희에 찬 목소리로 달수가 말했다. 뭔가 입으로 총을 연사하듯이 하도
정신없이 말하는 바람에 재후가 그의 입에 담배를 꼬라 박으며 천천히
말하라 한다. 담배 연기를 느긋하게 뱉으며 말하는 달수. 아까와는 분위기가
완전 딴판.
" 후우~ 그러니까 말야. 뒷 세계 쪽에 유명한 해결사가 한 사람 있어."
" 해결사? 그래서."
" K라는 사람인데 가명을 써서 별로 알려진 게 없지. 암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사람은 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가리지 않고 하거든."
"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결론이 뭔데!?"
화가 난 듯 재후가 옆에 세워져 있는 낡은 폐드럼통을 걷어차며 말했다.
과한 신경질에 달수가 겁 먹은 듯 움찔하였다.
" 그 사람에게 말했어! 이 마약을 가져가 달라고.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
마약을 줘서 조직의 추격을 그 쪽으로 돌리는 거지! 그에게 마약을 인도하면
우리는 안전할 수 있다구!"
" 그 해결사란 놈이 그렇게 대단해?"
" 그렇다니까 그러네! 의뢰 받은 일은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데."
" 그래. 그럼 그 사람에게 주면 되겠네. 그럼 되겠네."
그럼 되겠네. 그리고 잠시 멈춤. 그렇게 알 수 없는 멈춤의 시간이 5초 정도
흘렀을까? 재후가 의아한 듯 넌지시 물었다.
" 그런데 그냥 주면 자기가 알아서 받겠데?"
" 그건 당연히 아니고 일당을 줘야지."
퍼억! 다시금 재후가 불 같이 걷어찬다. 꽤액,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지는
달수의 모습이 불쌍도 하다. 그러니까 달수의 말을 요약하자면. 그 해결사에게
돈을 주면서 동시에 마약까지 넘겨야 한단 소리다. 물론 그 쪽이서 시선을
끈다곤 하지만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마약 뭉치를 돈 까지 얹혀서 줘야
한다니, 미치고 팔짝 뛸 소리였다. 목숨이냐 돈이냐, 정녕 그것이 문제로다.
Scene 10. 태수의 집. 거실의 식탁.
" 하하. 어때요? 이거 꽤 괜찮지 않나요? 제가 이래뵈도 머리 하난
비상하다구요."
재후는 한창 있지도 않은 사업 얘기를 떠벌리느라 입이 쉴 틈이 없었다.
물론 실체는 마약을 해결사에게 넘기기 위한 일환이지만 말이다. 사실을
말할 순 없다. 마약 건은 불법. 만약 이 일이 발각 됐다간 형제의 손에 의해
쇠고랑을 차게 될 것이다.
태수는 그만큼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어쩌면
형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다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거짓말 하느라
혀가 다 닳겠다. 여하튼 이야기를 다 끝낸 재후, 간당 간당한 표정으로
태수의 반응을 살폈다. 미묘하게 떨려오는 눈동자. 그 간절함 끝에
메아리처럼 되돌아 오는 태수의 대답은?
" 안돼."
맥이 탁 풀려버리는 재후였다. 절로 고개가 다 숙여진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은 삼형자가 유산을 골고루 나눠 가졌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분명
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은 많았지만 그걸 삼등분 했다간 일이 다 무산될 것이다.
그렇다고 또 솔직히 말할 수도 없고... ... 미칠것만 같다. 재후의 번뜩이는
눈동자가 태수를 노려보았다. 차분하게 말하는 태수. 카메라 각도는
샹들리에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 보는 각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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