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 눈은 초점이 없다. 그저 태양 광선에 반사되어 나오는 물체들의 빛을 통과시킬 뿐이다. 눈의 나태함을 아는지 뇌는 그 빛으로 가장 최소한의 활동만 하고 있다. 앞에 있는 것이 내 육체에 위험한가, 그렇지 않은가만 판별하기.
때때로 '죽고 싶다.' 고 생각했다. 주기대로 다가오는 행사처럼 치뤄진 이 생각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한다. 죽음 이라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져간다.
이런 무감각 속에 이 감정을 더욱 더 깊이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아무 저항없이, 오히려 반가운 태도로 맞이한다. 죽음에 대한 갈망.
역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면서 누군가 나를 밀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죽을 용기마저 없는 자의 바람.
하지만 달라졌다. 내가 이뤄낼 것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힘써 해결해야 하는 나의 바람일 뿐이다.
이런 바람가 상관없이 막상 차가 들어올 때면 한걸음 물러서는 내 다리를 보게된다. 화가 난다. 이 것마저 내 뜻을 몰라 준다. 내 머리 속에는 뇌가 두개다.
어제는 드디어 내 말을 들었다. 내 다리, 착한 내 다리.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걸음 물러서 계셨다가..."
내 귀가 반응하고 내 다리와 팔은 뛰어들 준비를 했다.
타이밍이 중요해. 긴장하고 있자.
야릇한 긴장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원하던 것을 이루기 전의 희열, 죽음을 앞둔 쾌락.
하나, 둘. 셋!..........
이루어 냈다. 드디어 내가 스스로 이루어 낸 것이다. 최소한의 삶마저 연장하려했던 하나의 뇌의 죽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그 뇌의 죽음뒤에 찾아왔던 나머지 뇌의 죽음에도 감사한다.
지금의 나는 뇌가 없다. 내 의지에 순종했던 다리와 팔과 도약을 했던 다리의 근육만이 있을 뿐이다.
나의 것은 이것 뿐이다. 내 다리와 팔과 다리 근육. 그리고 마지막에 용기있었던 나의 의지.
난 이것들을 사랑한다. 다리여, 팔이여, 근육과 용기여. 나에게 주어진 자유요, 지금은 남지 않았으며, 영원히 함께 있을 나의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