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개로 우리 가족 중 누가 비어있는 대통령 공석에 가 앉을지 논의를 했다.
엄마를 대통령 시켜주자는 아빠의 말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은 엄마와 따로 살아야 하는 건지 물어보았다.
나는 딸에게, 따로 살지는 않지만 하교 시간에 데리러 갈 수는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때까지만해도 빙글빙글 나는 웃고 있었다.
딸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그건 괜찮을 것 같아!. 자유시간 오예! 하고 말했다.
나는 심장이 덜컹했다.
줄넘기 학원도 엄마가 데려다 주는 것보다는 픽 업 온 학원 선생님을 따라 가는 것이 더 좋다고,
사실 등교도 혼자서 하고 싶었노라고.
그 말들을 지금 일기에 적고 보니, 아이의 성장, 독립에 대한 욕구 뭐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 멍한 표정을 보고 남편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커리어를 다 포기하고 기꺼이 셔틀버스가 된 나에게 쏟아지는 비웃음 같았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재우고 차분히 생각을 해 보았다.
이 벌렁거리는 마음에는 무엇이 들었나.
처음에는 아이에게 서운한건가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뭔가 내가 아이를 답답하게 한걸까. 뭐가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번뜩이다가 나의 8살을 생각해보았다.
친구랑 학교 가고 싶고 놀러가고 싶을 때
엄마를 끼워줘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이의 성장에 당황하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나자, 나는 나에 대해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엄마 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라고 해서 나는 올 초 이사 오면서 구직 계획은 완전히 배제했다.
나는 아이를 위한 희생이었는데, 아이는 그런 식의 희생은 필요하지 않은 성향이었던 것 같다.
조금 허탈하고, 그리고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처음으로 독립의 신호를 보내온 딸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어릴 때 나는 맞벌이 부모님 아래 혼자 자라서 다섯 살 때부터 혼자 어린이집에 오가고 끼니를 챙겨 먹던 대단히 독립적인 아이였지만 비오는 날 학교 현관문 앞에서 느껴야 했던 슬픔이 있었다.
운동회 한 두 번 말고는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아이를 위한 셔틀버스가 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내 아이는 그런 슬픔을 맛보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정말 자유를 누리며 자랐고, 그 속에서 재미났고 스스로 배운 것도 참 많았지만서도, 슬픈 기억만 사무쳐 명료하게 남아있었다.
어린 나에게 필요했던 돌봄을 내가 베풀면서, 사실은 8살의 나를 어루만지고 싶었던 것 같다.
독립의 신호를 기꺼이 받아주겠다고 다짐하며,
나와 외모도 성격도 많이 닮았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내 딸을 인정하기로 했다.
다음주에는 집에서 2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혼자 등교하겠 단다.
그래, 그러렴, 엄마는 땡큐다.
그리고 딸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를 위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인공고를 다시 뒤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