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속에는 당시 무슨일이 있었는지 줄줄 기록되어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비통한 심정만 잔뜩 주절거려 놓았는데
대체 무슨일 때문이었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도 있다. 그때는 그렇게나 죽겠다고 앓는 소리를 냈구나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때 무슨일로 힘들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자주 만나던 친구와 즐겨가던 식당, 유행하던 여러가지들이 기억난다.
세월이 흐르는 것을 잘 모르고 지내다가, 그럴 때 문득 세상이 변했다고 느낀다.
이런 나이듦을 증명하는 것 같은 생각을 하게될 줄 몰랐지만 정말 그렇다.
그리고 나도 많이 변했다.
드라마에서는 캐릭터가 여러가지 사건을 겪고 성장을 하지만
실상은 성장의 이면에는 그림지가 따르는 걸 이제 알게되었다.
살기위해 내가 획득한 아이템들이 그때의 나에게는 필요했고 지금도 여전히 필요할 때가 종종있지만
그보다는 번거롭고, 때로는 나와 주변을 힘들게하는 자폭템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든 다는 것은 시행착오를 줄여가는 것이라고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 말에 참 공감을 하면서도, 어째서 이렇게나 나는 여전히 이불킥하는 일들을 벌이고 다니는지 자문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좋은게 좋은거고, 개그맨도 아니면서 상대를 웃기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던 젋었던 나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의 나는 약간의 위험만 감지되어도 나는 발을 빼버리고, 조금만 공격이라고 생각되면 그 상대에게 망설임 없이 돌아선다.
아마도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겁쟁이 마음이 벌인 일이겠지.
과도한 책임감에 눌려 살던 나였지만 이제는 다 집어던지고 도망치기를 잘한다.
죽을 것 같던 고통으로부터 이제는 좀 안전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도망친 일이 죽을 만큼의 위험 상황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바늘 끝에 찔려 놓고 의사부터 찾는 것처럼. 건강염려증처럼 과민해져있다는 것이 문제다.
위험으로 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니, 어른 마음의 눈에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벌이고 다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의견조율이 필요했던 어떤 일상이었다.
무균 상태의 세상은 없다.
오해가 생겨도 얼마든지 균형을 맞춰나갈 수 있다.
어른 마음이 겁쟁이 마음을 다독여 본다.
지나간 시간이 나에게 남긴 흔적과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을 혼동하지 말자.
나를 보호하려는 겁쟁이 마음의 수고를 충분히 알고있지만, 그것이 고맙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러니 이제 괜찮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을 곱씹으며
우리 조상들이 당시 얼마나 트라우마에 대해 깊이있는 이해와 통찰을 했는가..하고 감탄해본다.
잘 읽고 갑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