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기가 잠들고 나혼자 잠들지 못해 거실을 서성이고 있다.
평화롭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자유롭기도 하고 심심하기도한 그런 기분이다.
매일 똑같이 하루가 흘러가지만 나는 매일 다른 불안을 마주한다.
처음 엄마가 될 때도 나는 무서웠다.
아기와 함께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고 익숙해지면서 두려움은 조금씩 안심으로 바뀌어가지만
여전히 어려운 시험문제를 마주한 것 같은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소소한 걱정을 들어주는 남편은 내가 사서 걱정을 한다고 잔소리같은 위로를 건네는데 그게 또 위안이 된다.
아, 어려운 문제라기 보다는 정답이 없어서 어렵게 느껴진 것은 아닌가.
지금 당장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를 바로 해결하려고 용을 쓰고 있어서는 아닌가.
남편이 나와 다른점이 많아 얼마나 다행인지.
아기가 크고 내 몸과 마음에도 여유가 찾아오면서 책도 읽고 싶고 글도 쓰고 싶은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시간이 펑펑 남아돌아 생긴 지루함과는 다르게 빠듯한 여유이지만 이상한 만족감이 있다.
식사 후 달디단 후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엄청 배가 고프다가 밥을 먹었을 때의 안도감을 동반한 배부름?
육아서적이 아닌 다른 책을 읽고 싶어지는 것 자체가 뭔가 설렌다.
아기를 키우는 것에만 온 정신을 쏟았는데 이제야 다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신호같다.
모두가 잠든 집 거실에서 원래부터 나 혼자였던 것처럼 앉아 오래 묵혀둔 노트북을 꺼냈다.
전화도 할 수 없는 시간에 아무말이든 하고 싶을 때는 이곳 밖에는 떠오르는 곳이 없다.
얼마나 다행인지 이런 곳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