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라는 키워드는 무능력이라는 단어와 함께 나를 꽤 오랫동안 괴롭혔다.
아마 자존감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올랐던 것을 보면.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남을 비교하지 않거나, 잘나지도 않은 사람이 세월 덕에 얻은 권력으로 나를 깎아 내릴 때
끄떡하지 않는 일이 쉽지 않아서 나는 이리저리 많이 흔들렸다.
내가 가진 능력의 상대적 크기가 '작지만 괜찮아' 라고 말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기면 내 이슈는 극복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괜찮지 않았던 적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어느 특정 시점부터 자존감이 바닥을 기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그 전의 나는 능력이 출중했던 걸까?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아주 미웠던 기억을 용기내 떠올려보니, 뭔가 실수하거나 무능력이 밝혀져 망신을 당한 장면보다는 누군가에게 서툴게 내 못된 감정을 표현하거나 작은 오해에 혼자 유난스럽게 부들부들 떨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적어도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잘 지켜오며 살았고, 그 자부심은 내가 중요하게 여긴 삶의 목표이자 가치관이기도 했는데 그게 무너지는 순간 나는 내가 너무 싫어졌던 것 같다.
무능력은 그냥 별개의 문제이고, 자존감은 사실 다른 이유에서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나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내가 변질되고 상했다고 생각했다.
망가져 버린 나에 대한 자포자기 심정도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이런 내가 아기를 키워도 되는가에 대한 불안감도 불쑥불쑥 튀어올랐다.
그런데 오늘 토크쇼를 보다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리나 상황에 따라 내가 가진 여러가지 모습 중 하나가 드러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꽉 막힌 시커먼 가슴에 구멍이나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 들었다.
변질되고 상한 것이 아니라 원래 내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니 그날의 내가 받아들여졌다.
나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참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렴풋이 어떤 느낌인지 알것 같았다. 여전히 말로 선명하게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다만, 한번도 내보인 적 없는 모습이라 어떻게 내비쳐야 하는지 잘 몰랐을 뿐이었다고.
가장 힘들던 시기가 끝나고, 그 뒤에도 나는 감정적 소용돌이에 자주 휘말렸지만 실제로 과거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나만의 제어장치들을 마련해 두고 나름 잘 조절하고 있다.
아마도 그 때만큼 스트레스가 적기 때문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어쩌면 한번 시행착오를 크게 겪었기 때문에 더 나아지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고, 오늘 처음 나에게 다시 희망을 품었다.
그랬더니 아주 오랜만에 무엇인가 적고 싶어졌다.
그럴 때 생각나는 곳은 항상 여기이다.
앞으로 나는 무엇을 의미있게 생각할지, 열심히 지켜가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시 찾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