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法則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 法則은 運命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神, 絶對者등의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神이라는 존재로 형상화된 이유는,
이 法則의 결과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식인, 絶對者의 뜻으로 묘사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 法則에 대해 단편적인 부분만을 알 수 있을 뿐이란 것을 반증한다.
그래서 老子, 莊子와 같은 사람들은 이를 道 라고도 정의하였으며, 혹은 無 라고도 하였다.
道 라고 정의한 이유는 이 세상은 이 法則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며
無 라고 정의한 이유는 인간의 관점으로는 이 法則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는 똑똑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은 이러한 槪念의 형태로 이 法則의 존재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연상태에서의 다른 생물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는
이 法則들의 중요한 몇가지 전제조건들을 槪念의 형태로 정의내리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等價交換의 法則.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어떤 것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가 없다.
간단한 예를 들어, 인간이 하루 세끼 밥을 먹기 위해서는 수많은 생명들의 목숨을 빼앗아야하며
이 추운 겨울날을 견디기 위해 보일러를 트는 행위는 지구의 대기를 곧바로 오염시켜버린다.
이 것이 존재의 外的인 행동에서만 국한되는 법칙이냐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內的인 思考, 感精 들 조차 이런 等價交換의 法則에 지배를 받는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평안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等價交換의 法則이 가장 처절하게 구현되는 곳이 있다.
일찍이 철학자 사르트르가 한 말 중에서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는 말이 있다.
즉, 인생은 生 Birth 과 死 Death 사이의 選擇 Choice 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바로 이 選擇 이야말로 바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즉, 살아가면서 選擇의 순간이 놓여지게 될 때,
인간은 반드시 等價交換의 法則에 대해 깊게 생각해야만 한다.
하지만 정말로 비참한 사실은, 우리 인간의 思考能力에는 한계가 있어서
이 選擇이 가져다 줄 결과에 대해 아주 단편적인 것밖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 세계를 움직이는 法則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하니까.
그래서 인간은 종종 選擇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 후회를 하곤 한다.
만약 후회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 것은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기가 고려했던 경우는, 모든 경우에서 매우 단편적인 부분에 불과했을 것이므로.
하지만 운이 좋지 않은 경우가 생기면 사람은 늘 후회를 하곤 한다.
하지만 왜 후회를 하는 걸까?
그것은 인간이 그 選擇을 함에 따라서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실은, 정말로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한 것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選擇은 무엇을 얻게 되고 무엇을 잃게 되는지에 대해 명확히 아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그것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지금 내가 내리는 조그마한 選擇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무엇을 얻게 될 것이며 또한 무엇을 잃게 될 것인가.
이 결과에 대한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면 누구나 選擇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오를 해야한다.
만약 내가 내리는 選擇이 잘못되어, 소중한 것을 얻지 못하거나 혹은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면
자신은 그 결과에 절대로 좌절하지 말고
그 것들을 되찾기 위해, 자신을 갉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것들을 대가로 내어주고
그 소중한 것들을 되찾으러 떠나야한다고. -夕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