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 불만족]을 읽고.. 2001년 1월 어느 날..
이 책은 2년 전에 출판된 책이다.
그 당시 매스컴에서 '오체 불만족'이란 책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오체 불만족'읽어봤어? 라는 얘길 들어도
그냥 그런 책이 있나보다 하고 말았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2년이나 지난 후에야 읽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일주일 전. 해마다 그렇듯이 뿌듯함보다는
아쉬움과 후회를 더 많이 남기고 떠나 보낸 2000년을 뒤로하고
2001년의 새해가 밝은 지 며칠이 지난 때였다.
스물 네 살이라는 나이를 인식하면서
지난 학창시절과 사회인으로서의 생활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나날들을 그려보며 알 수 없는 막막함에 휩싸였던 것이다.
아직 젊은데 무슨 걱정이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때론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릴 때도 있는 것이다.
난 용기를 얻고 싶었다. 용기를!
동네 도서대여점에서 이 책을 처음 펼쳐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 책을 쓴 사람이 너무 잘생겼다는 것이었다.
환하게 웃는 프로필 사진 속 주인공의 얼굴에는
세상의 어떤 시련도 해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베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뒷표지에서 눈에 띄는 한 줄의 문구를 발견했다.
살아가면서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탓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
'어떠한 시련도 행복의 기회일 뿐, 불가능은 없다!'
그것은 나 스스로 인생의 스승으로 삼고 존경한다고 외치던
이케다 선생님께서도 항상 강조하시던 것이었다.
시련을 괴로움으로만 남길 것인가 그것을 타고 넘어
더욱 더 행복해 질 수 있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 하는
용기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 오토다케는 태어나면서부터 팔다리가 없었다.
오토가 태어날 때 병원에서는 아이의 상태를 보고
산모와 가족들에게 어떻게 알릴까를 고민했고,
약간의 이상이 있다며 미루고 미루다가 아이는 태어난 지
한 달이나 지난 후에야 가족들과 상봉할 수 있었다.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아이를 처음 본 오토의 어머니의 첫마디는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였다.
오토의 부모는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식할 틈도 없이
보통 아이들과 똑같이 교육시켰다.
오토가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그렇게 밝고 자신감 있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부모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초등학교 때 담임이었던 다카기 선생님의 존재도
그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팔다리가 없어서 오히려 친구들이 많았고
골목대장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오토.
하지만 그에게 친구들이 많이 따르고
그가 누구보다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팔다리가 없었던 때문이기 이전에 천성으로 갖고 태어난
밝고 낙천적인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장애인이 쓴 책이라서 어느 정도 우울함과
어두움이 깔려 있을 거라는 나의 편견은 오토의 재치있고,
발랄한 생각과 경험들을 써내려 간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어느 새 사라지고 있었다.
오히려 난 그의 밝고 낙천적이며 자신감 있는 성격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누가 '당신의 성격은 어떤가요?'라고 물으면
'밝고 명랑하며 낙천적인 성격입니다.'라고
당연한 듯이 대답하던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밝은가. 나는 정말로 낙천적인가.
대답은 한마디로 'NO'.
밝고 낙천적이라고 말해야 나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갈 것이라는
계산된 생각이 기계처럼 그런 대답을 하게 한 것 같다.
끊임없이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오토가 잃지 않은 것은
자신감과 즐거움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이 때로는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고 터무니없는 발상으로
주위를 어처구니없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는 항상 즐겁게 해 나갔다.
그의 그러한 낙천성과 용기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나의 생명과 세포 안에 모두 담아 진짜의 내 것으로 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오토에게 배워야 할 점은
장애인으로서 그의 삶의 자세가 아니라,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든 아니든
어미 뱃속에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르게 처한 환경에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 하는 점인 것 같다.
나 또한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이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인데
이 질문은 '왜 태어났는가'로 바꿔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오토는 그 답을 너무도 빨리 찾은 것 같다.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그는 그런 모습으로 태어난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마음의 장벽 없애기'활동을 하고 있는 오토 다케는
그 해답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마음의 장벽 없애기'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나에게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자신의 역할'을 젊었을 때 깨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 들어 깨닫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는 죽음을 앞두고야 '아, 내 역할은 이런 것이었구나'하고
깨닫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경우, '장애'라는 알기 쉬운 표식 때문에
내 역할을 조금 일찍 깨달았을 뿐이다.
깨닫는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누구나 반드시 '자기의 역할'을 갖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세계를 둘러보아도 자기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없다.
단 하나뿐인 사람에게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긍지를 가져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왜 나만 성적이 나쁠까' '왜 나만 못생겼을까'라며
'왜 나만'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자신은 하나밖에 없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왜 나만'이라며 자신의 인생을 보잘것없게 만드는 말 따위는
입에 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으면 눈앞에 있는
상대의 '개성'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단 하나의 존재이듯이,
상대도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 많은 사람들과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존귀한 일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 '오체 불만족'.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유가 있어서라 아니라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더욱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해졌다.
세상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그것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내가 숨쉬고 있는 세상에 대한
보답이 된다면 더욱 좋겠다.
이 세상에서 다 하여야 할 사명이 있다.'라는
어느 노래 가사가 문득 떠오른다.
내가 태어난 이유. 살아가야 할 이유.
이 세상에서 내가 다 하여야 할 그 숭고한 사명을 찾기 위해,
그것을 성실하게 해내기 위해 난 오늘도 숨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