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30분 이제 아침에 눈을 뜬다는것이 짐스럽기만하다. 창문을 긋는 빗줄기를 보는 순간 눈을 후집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떨렸다.
빗속에 싸인 학교.
그 학교 잔디밭을 이런 날 걷는다는 것은 지뢰밭을 걷는 병사의 마음과도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빗속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정신없이 생각해야했다.
퉁퉁불은 라면을 먹은 배를 쓰다듬으며 우산속에서도 허겁지겁 뛰어야했던
그 작은 골목 유년의 내모습.
아스팔트와 부딧히는 발자욱 소리가 첨벙첨벙 처량하고
반쯤 떨어진 구인광고를 입고있는 전봇대를 보면서
문득 1984년 초등학교 5학년의 나를 보았다.
국기함을 만들던 나의 곁에서 햇살처럼 손목을 잡던 교생 선생님.
그녀와의 만남은 과천에서 남긴 나의 마지막 추억이었다.
집을나서면 웬지모를 슬픔이 내눈망울을 하염없이 쥐어짜던 그때
아마도 일종의 우울증이 아니었나 싶다.
4번의 전학은 매번 낮선환경에 적응해야하는 어린 나에게
야누스와같은 두가지 성격을 가질것을 요구했고 그걸 또다시 받아들여야하는 그해 5번째의 전학은 그만 참다못해 퉁겨져나온 무지개처럼 모든것에 줄을 긋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며 어떤 자세가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다.
맑은 미소와 작은 관심들로...
물론 그땐 갈매기의 꿈 이 그저 이솝우화나 별반 다를게 없다고 느껴지던 때였지만 말이다.
그녀는 두 꼬마와 특별한 관계였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선...
방과후면 꼬마들은 한참을 기다렸고 그런 꼬마들을 귀찮아 하지않은 그녀는
방과후면 사라지는 다른 교생선생 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였다. 나에겐 더더욱 더...
엄마께서 만들어주신 등나무바구니를 선물한 이후부터 그녀와 나는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선 노래부르길 마다하지 않았으며
뭐든지 좋은 인상으로 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마져 들 정도였다.
아마 녀석도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 문제로 그녀앞에서 싸우기도 했었으니까.
학교부근 관악산 줄기에는 금새 죽을듯한 붉은 산딸기가 모자를 물들이기 일쑤인
나의 모습과 그 새빨간 모자속의 달콤함을 미안스럽게 맛보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빗속에 남겨져있다.
그녀와의 약속. 일기쓰기...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울먹이는 꼬마들을 뒤로하고
다시오마던 그녀와의 작은 약속이 시작된건.
그녀와 나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편지를 주고받았고 가끔씩 서로가 쓴 시를 보내곤 했다.
마지막 전학. 그 이후 3년...
말이 아니었다 더이상 기울길 없던 가세, 부모님의 불화
그와함께 떨어지던 성적. 그리고 그녀의 방문...
유리조각처럼 입안을 찢어놓던 팥빙수는 그녀를 비오는 놀이터에서 돌려보내야 했던
나의 혀끝에 아직 박혀 끝없는 죄송함을 남기고 있다.
"왜 모시고 오지 않았니?" 누워계시던 엄마의 이 한마디가 빗장을 걸기에 충분했던 것일까
더이상 그녀에게 답장을 하지않게 된것은 유년의 추억과 작별을 고하던 제딴에는 힘들었던 사춘기의 어리석은 결론이었다.
걱정어린 편지를 박동이 멈추어가듯 보내던 그녀.
그 편지를 읽으며 마음속의 답장조차 이제는 짐이되어 가던 내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일기를 쓰는 것 뿐 이었다 .
이젠 그 약속조차 허물어져 버렸지만...
책장속에 자리잡은 갈매기의 꿈은 그녀의 사진과 함께 먼지가 쌓여가고있다
이젠 그녀가 나에게 저 책을 준 의미를 알 나이가 되었지만
이미 조나단의 날개는 퇴화를 시작했고...
시인이 되겠다던 나의 꿈은 과학자로 파일럿으로 건축가로 물방게의 방향처럼 바뀌었고
무덤덤한 생활은 아무계획 없이 마지막 학창시절을 잠식하고있다.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면 어색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다시 만나게 되면 엉덩이를 철썩 철썩 때려주겠다던 그녀는 날 용서할까
선생님 절 아직 기억하십니까? 곱슬머리 꼬마 원재.
4년간의 편지는 제게 큰 등대가 되었습니다
비가 오는군요 그때 처럼... 훌쩍 커버린 원재가 선생님을 생각하며 이렇게 글을 씁니다 .
...10시30분 이제 아침에 눈을 뜬다는것이 짐스럽기만하다. 창문을 긋는 빗줄기를 보는 순간 눈을 후집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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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선생님 지금쯤 결혼하셨겠죠...
당신을 닮은 사랑스런 아이도 있을테구요
저 많이컸어요.. 보고싶으시죠..
여기저기 선생님을 찾으러 노력했지만 잘 안되네요
비록 시인은 되지 못했지만 글은 자주써요...
앞으로는 실망시켜드리는 일 없을거에요. 지켜봐 주세요.
선생님... 죄송해요...
제 영혼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셨었는데...
그점은 아직도 변함없습니다.
^^
감사드려요. 그리고 마음깊이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청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