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로막고 서는 자들은 껄끄럽다. 그 사람이 논리적이든 아니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자이든 아니든 어떤 형태로든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다. 눈을 마주해야 하고, 몇 마디든 말을 해야 하고,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데 그건 참 번거롭기만 하다. 문지기는 어디에 있는 누구이든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존재이다.
'내가 아무렇게나 대답한 건 맞지만 그게 네가 내 앞을 가로 막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보는데?'
여우 한 마리인 내가 말했다.
'가로 막은 거 아니야. 어디로든 가도 돼. 널 막는 게 아니라 단지 네가 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뿐이야. '
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건 그냥 알고 있거든. 체질적으로 그런데는 예민하니까. 게다가 내가 스스로에 대한 분석은 썩 잘하는 편이야. 인간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박한 어떤 녀석도 그거 하나는 감탄을 하더군.
'그래서, 이제 상어가 되는 일은 접은 다음이니 뭐 할꺼야? 다시 포도 넝쿨 아래로 돌아갈건가?'
'내가 언제 너를 만났던가? 그래서 내 이야기를 다 한 거야? 어떻게 내 일을 알고 있는 거지?'
'뭐, 난 세상에 존재하는 꽤나 많은 문지기와 친분이 있어. 너의 포도넝쿨을 지키던 문지기와도 알고 지내는 사이지.'
'웃기지 마. 내 포도넝쿨에 문지기 따위는 없었어.'
'네 눈에 보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자들의 눈에는 보였을걸. 그들이 그 포도넝쿨 아래로 들어가려면 다시 나름대로의 이유를 얘기해야 했을거야. 언제나 눈에 보이는 건 네게 필요한 것들 뿐이라고. 그 소중함을 아는 이들이 드문 게 문제일 뿐.'
구깃한 모자를 비스듬히 눌러쓴 상어박물관의 문지기였던 녀석은 왠만해서는 내게서 떨어져나갈 것 같지 않았다.
'다시 길을 나설건가?'
'아니, 길 위의 여우 한 마리는 이 세상에 너무 많아. 길 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것 같지도 않고.'
'그럼, 정말 다시 포도가 신가 어떤가를 확인하려고?'
'그것도 아니야. 난 피터팬처럼 나만의 네버랜드를 만들어보려고 해. 내가 있어서 의미 있는 세상을 말이야.'
'그건 어떤 모습이지?'
'친구도 있고, 적도 있고, 이웃도 있고, 필요한 일거리도 있고, 여가도 있는 곳. 갈등과 화해와 약간의 만족감이 있는 곳이면 될 듯해.'
내 말을 곰곰이 듣고 있던 문지기가 묻는다.
'그럼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낼 것은 뭐야?'
'물론 적이지. 피터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후크 선장이거든. 그가 없다면 피터팬에게 삶의 긴장감은 있을 수 없어.'
'너에게 어떤 적이 어울릴까?'
'적어도 너는 아니야. 넌 정말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내 적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난 아무래도 너를 꽤나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래서 네 말과 행동과 이상한 표정까지도 적대감을 갖고 대하기 보다는 이해해버리게 될 것 같아. 넌 적이 될 수 없으니, 그냥 내 팅커벨을 하는 게 낫겠다.'
'이렇게 흉악하게 생긴 팅커벨 봤니?'
그러고 보니, 귀여운 인상은 아니다. 요정을 시켜주기에는 자격 미달인가. 뭐, 그럼 새로운 요정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임시로.
'뭐, 그건 넘어가기로 하고. 우선 길을 나서보자. 어딘가에 우리의 적이 있을 거고, 그곳이 우리의 네버랜드가 될테니까. '
여우 그림자와 문지기 그림자가 여우 한 마리와 문지기 한 사람을 이끌고 다시 사막 위에 섰다. 멀리서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다. 바람이거나 아니면 생명체들의 움직임이다. 어쨌든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 그곳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흙먼지 속에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두렵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감도 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