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이야기들이 있다. 로드무비의 경우 주인공들은 길 위에서 삶의 의미를 몸소 체험한다. 그들에게 목적지는 중요치 않다. 여행기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이 길을 떠나는 소설 또한 최종 목적지 따위는 큰 의미가 없다. 가장 값진 것은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아, 이런. 난 과정 따위 건너 뛰고 싶은데, 난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가 가장 궁금한데. 왜 이야기를 엮어내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귀찮은 '과정'인 걸까.
나는 연금술사에서 보물이 묻힌 곳이 수도원이든 내 집 뜰이든 그 장소가 중요했다. 여행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주인공이 운이 좋아서 혹은 인연이 닿아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뭐 그런건 내 관심 밖이었다. 보물을 얼른 찾아서, 배부르고 등따시게 살게 될 그의 모습이 보고 싶었고, 궁금했을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과정'이란다. 젠장.
'과정'이 귀찮은 아직은 여우인 나는 들판을 벗어났다. 여전히 상어가 되고 싶은데, 여우에서 상어로 변이하는 과정에서 피라미라는 단계는 필요치 않다니까 그건 통과다. 어쨌든 1급수는 벗어난 것이다.
사막을 건너는 도중에 나는 거울을 지고 오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거울만 뺀다면,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의 어깨가 큼직한 거울에 찌부러질 듯하다.
'무거워 보이네요. 거울을 배달하는 중이신가봐요.'
내 말에 거울을 진 사람이 대답을 한다.
'아니, 나는 지금 '나'를 배달하는 중이야.'
'그럼, 굳이 거울과 함께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하고 그래요?'
'아름다워 보여야 하거든. 예쁜 게 상품 가치가 높아. 그래서 항상 내 모습을 점검하려고 거울을 들고 가는거야.'
거울만 없으면 완벽해보일 사람이 거울을 지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이상했다.
'거울이 없어도 당신은 완벽해보이는데?'
내 말에 거울을 내려놓고 자신의 모습을 점검해보던 아름다운 자가 거울 속 자신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알아. 내 상품 가치가 높다는 건. 하지만, 이 사막을 건너는 과정에서 내 모습을 비춰줄 존재는 만나기 어려워. 너처럼 나를 보고 완벽하다고 해주는 여우를 늘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모래 바람에 옷깃을 흩날리며 말을 하는 아름다운 사람은, 자신의 실제보다 거울 속 모습이 더 눈부셔보였다. 햇살 때문이었을까.
'어디로 배달을 가는 건가요?'
'여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는거야. 외모가 완벽하게 신비로워야하는 직업이지. 사람들은 나의 눈부신 외모를 보고, '여신'이라고 떠받들어. 난 그들 사이를 살풋 지나가주기만 하면 돼. 눈속임이 필요한 정치가에게 고용된 거지만, 보수는 괜찮아. 여신과 친한 정치가가 되고 싶은 가봐, 이번 내 고용주는.'
아직 여우인 나는 아름다운 사람의 말에 흥미가 생겼다. 어쩌면 꽤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
'당신이 가는 곳에 상어가 있나요? 만약 그러하다면 당신과 동행을 하고 싶은데.'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없는게 없는 곳이라니까 상어 정도는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그 아름다운 사람의 말을 믿기로 하고, 여우인 나는 그와 사막을 건너가기로 했다. 아름다워서 여신이 될 수 있는 사람과의 동행은 싸구려 유리알처럼 사람의 마음을 순간적으로나마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