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에게는 아가미가 없다.. 폐로 호흡하는 존재에게 바다 속은 죽음의 공간이다. 이곳이 정말 바다이고, 내가 진짜 여우였다면 난 5분을 넘기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난 살아있다. 그리고 움직인다. 유유히, 중력과 관계 없이. 내가 사는 세계는 한 군데여야 하는데, 그 이른바 상식이 통하는 세상 속 어딘가에 비상식으로 흘러드는 통로가 있었던 걸까. 앞으로 나아가 본다.
이곳은 틀림없는 바다이지만 사각형이다. 수족관인가? 박물관 속에 수족관이 만들어져 있고, 흰 상어들만의 공간이 조성된 것이라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뭐지? 아까 마을 사람이 얘기하지 않았나? 이곳에 살이있는 상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관광객이냐? 이번에는 여우상어로군. 다양한 존재들이 이곳을 방문하는데, 여우는 오랜만에 보는 듯해. 상어 입장에서야 뭐 여우도 나쁘지 않아. 색다르거든.'
가까이로 다가온 상어 한 마리가 말을 건다.
'원하는게 상어가 되는 거라고? 소원 풀었네. 넌 상어로 보여. 여우 상어. '
결코 정감이 가지 않는 생김새. 그런데, 말하는 투는 마음에 들었다.
'상어는 어떤 존재지?'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다른 귀퉁이로 헤엄쳐가버리는 상어 한 마리. 나도 따라가 본다. 이상한 사각형 바다다. 정말 상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물과 상어와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공간.
'생존 의지가 강한 생명체야. 그래서 거칠어보이지만, 인간처럼 탐욕스럽지는 않아. 필요 이상의 것을 바라지는 않으니까.'
다른 상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말을 잇는 여우 한 마리.
'여기 있는 상어들 중 살아있는 것은 없다고 들었는데, 무슨 의미지? 너희들은 호흡하고 있잖아.'
'살아있지 않아. 죽어있지도 않지만. 여우 상어로서의 너 역시 마찬가지야. 죽지 않았으되, 살아있는 존재는 아니지. '
물살에 따라 이리저리 헤엄치는 상어들은 틀림없는 생명들인데, 여우 털을 흔들고 지나는 것은 바다물이 분명한데.
'소원을 푼 여우 상어야. 이제 나가. 네가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이게 다야. 상어가 되고 싶다고 했고, 넌 여우 상어가 되었어. 네가 그 모습 그대로 영원히 이곳에 머물고 싶다고 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아. 이곳은 모두의 공간이니까.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넌 나갔으면 해. '
그러고 보니 문지기가 말했지. 난 내 말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상어가 되고 싶어서요.'라는 내 말이 무슨 잘못이었다는 걸까.
'내가 그랬었지, 문지기에게. 난 상어가 되고 싶다고. 그리고 지금 이 모습으로 10년이 흘렀어. 난 상어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풀었지만, 그게 다야. 나 역시 아직도 생각하고 있어. 내가 원했던게 정말 상어가 되는 거였을까하고 말이야. 그래서 여우 상어인 너는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어. 생각의 감옥에 갇혀서 10년을 보낸 나와 같은 잘못은 되풀이하지 말고. 이곳은 모든 것이 완벽하고, 난 상어이지만 어쩌면 나는 상어에게 쫓겨다니는 1급수의 피라미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야. 그러니, 지금, 나와 같은 대답을 하고 이곳으로 들어온 너는 밖으로 나갔으면 한다.'
'넌 왜 이곳에 남으로려 하는데? 단지 겉모습이 상어인 채로는 흡족한 해답을 찾지 못한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럼 너도 나가면 되잖아. 내가 나갈 수 있다면 너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너도 나가면 되잖아. '
다른 상어들의 움직임을 먼 눈으로 바라보던 상어가 여우 상어..모습인 나를 보고 이야기 한다.
'이곳에 너무 익숙해져버렸어. 난 1급수의 피라미였는데, 바다의 상어가 된 거거든. 난 내가 상어가 되면 모든 의문이 풀릴 줄 알았어. 내가 왜 상어가 되고 싶었는지. 그런데, 결과적으로 난 단지 1급수 개울에서 1급수 바다에 살게된 피라미상어일 뿐이더군. 구체성이 없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야. 겁내기만 해서 벽에 부딪히기만 하는 생각도 환각이야. 이리저리 벽에 부딪히다 결국 만들어내는 것이라는게 이 사각형의 수족관 바다야. 이곳은 모든 것이 완벽해. 그래서 슬퍼. 너무 완벽한 것은 짠한 거야.'
여우 상어인 나는 답답해졌다.
'의문을 품었다면 나가면 되는 거야. 내가 포도 넝쿨을 젖히고 나온 것처럼. 너 역시 이 수족관을 깨고 나갈 수 있어. 아무도 너를 가로막고 있지 않아.'
내 말에 다시 공허한 눈이 되는 상어 한 마리.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걸까. 1급수 상어에서 1급수 피라미로 돌아간다고 뭐가 달라지지? 난 아직도 내 생각의 벽에 부딪혀 피를 흘리고 있어. 그래서 너는 나갔으면 해. 생각의 벽을 넓히고 있는 너는 이 곳을 나가. 넌 상어가 되고 싶은게 아니야. 다른 답을 찾아. 하나가 아닌 무한대의 답을 찾아내. 그리고 다시 나를 만나러 와줘. '
'너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 그래. 난 여기서 나갈게. 그리고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려고 발로 뛰고 가슴으로 느껴볼게. 그 후 몇 개라도 답을 찾으면 너에게 말해주러 돌아올게. 하지만 내가 왔을 때, 너 역시 이 곳에 없었으면 좋겠어.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 네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으면 해. '
상어 박물관을 나서며 돌아보니, 아직도 바다 수족관에 몇 마리의 흰 상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그들은 고요하고 평화로워보였지만, 결코 여우 한 마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난 '상어'라는 단어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강자'라는 단어가 되고 싶었던 것 역시 아니다. 마을을 뒤로 하고 다시 길에 오르자, 아름다운 사람의 거울이 산산히 깨어지고, 아름다운 사람도 흩어지고, 상어 박물관도 비명으로 사라지고, 정치가도 마을 사람들도 그리고 마을도 흔적 없이 흩어졌다. 아, 모든 것은 환상이었던가.
...라고 생각하며 터덜하니 발걸음을 옮기는데, 눈 앞에 한 사람이 보였다.
'아니야. 환상이라니, 모두가 실체야. 단지 이제 너에게 필요없는 것이라 네 눈에서 사라졌을 뿐이야.'
아, 이런. 저 녀석은.
'그런데, 넌 아직 나를 극복하지는 못했나봐. 내가 아직 네 앞에서 살아 움직이니 말이야. '
비죽한 웃음. 상어 박물관의 문지기인 것 같았던 그 녀석이다. 배알이 꼬인다.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