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길을 잃다.
성수와 그리고 상자 안의 고슴도치 네 마리. 그렇게 딱 다섯 생명이 길을 가고있다. 집에서는 엄마를 알고 있는 기범이와 기범이를 모르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집은 성수가 방금 나온 수퍼에서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불과 몇 분만에 오갈 수 있는 거리이다. 평상시 대로라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평상시가 아닌 듯하다. 아무리 걷고 걸어도 결국은 '공원' 입구가 나오고 있다. 다리가 아파진 성수는 하는 수 없이 공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쓰레기를 치우는 늙은 양반이 한 사람 있다. 늦은 오후 시간. 공원을 찾는 객은 많을 터이고, 청소하는 분은 퇴근했을 시간일 텐데, 이상한 생각에 말을 걸어본다.
"안녕하세요? 청소를 늦게까지 하시네요. 보통 아침 일찍 청소하시고, 돌아가시는줄 알았어요. "
성수의 말에 쓰레기를 분리하던 손을 멈추고, 늙은 양반이 허리를 편다.
"정하기 나름이야. 청소는 사람이 없는 시간을 이용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 "
그리고 총총히 그 자리를 떠나버리는 늙은 양반. 아, 다리가 아프다. 벤치에 앉아 (언제나 앉던 자리에 벤치가 있다는 건 기적이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직은 햇살이 제법 남아 있다.
'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도통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네.'
그렇게 10분, 20분, 30분이 흘러갔다. 그리고, 아까의 늙은 양반이 되돌아 왔다.
"이봐, 청년. 그 고슴도치, 어디서 났나. 혹시 청마 수퍼 것인가?"
하면서 성수의 옆 자리에 앉는다.
"네, 방금 사 왔어요. 그런데, 뭐가 잘못됐는지 집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앉아 있네요."
성수의 말에 늙은 양반이
"고슴도치의 의지가 자네의 욕심보다 더 강해서 그래. 고슴도치는 적어도 자네 집으로 가고 싶지는 않은가봐. 그러니 자네가 길을 잃었지. 차라리 고슴도치를 이곳에 놓아주는게 어떤가. 내가 오며가며 잘 보살펴 줄터이니. 물론 자네도 오며가며 들여다 보고 말일세."
라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고슴도치의 의지와, 성수의 욕심. '..이 충돌을 하여, 성수의 패배라는 말인데, 흠, 이상한 일들의 연속이군. 이라는 생각을 하며, 성수는 늙은 양반에게 우선은 고슴도치를 맡긴다. 그렇게 공원을 나서자 이내 집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의지와 욕심이 부딪치고 있다는 지금은 그런 세상인 것인가.
8. 집안에서
"엄마, 기범이는요?"
"그게 누군데?"
언젠가 나눴던 대화 같은데,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성수는
"아, 됐어요. 또 먼저 돌아갔나보죠."
라고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엄마, 고양이와 고슴도치 이야기 마무리 지었어요?"
하니
"어, 이미 끝내서 출판사에 넘겼어."
하며 지금은
"실내화와 풀꽃 이야기를 쓰고 있어."
라고 하셨다.
"엄마, 이것도 접점이 없잖아요."
라고 하자
"있어. 청마 수퍼에."
라고 이전과 같은 대답을 하신다.
"청마에서 엄마는 무얼 사셨어요?"
성수는 엄마가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반찬거리와 비누와 실내화. 그리고, 화분을 샀어. 담쟁이 화분."
집안 어디에도 담쟁이 화분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런데, 오는 길에 화분을 약국에 주고 왔어. 담쟁이의 의지가 내 욕심보다 더 커서 말이야."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내뱉으셨다.
의지와 욕심의 충돌. 지금 성수의 세상에서는 이 둘이 모든 면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길이 어긋나는 것도, 많은 것이 바뀌어가는 것도, 사람들이 자꾸만 변화하는 것도 모두 이 의지와 욕심의 충돌이다. ..그럼, 성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세상을 정상으로 되돌려놓기 위해서는 - 사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 더 많은 욕심을 내거나 더 많은 의지를 가져야 하는 것일까. 문득 기범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이내 전화벨이 울린다.
peace and happy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