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이 온 날이.. 중복인가 말복 때였으니까
녀석과 함께 한 시간은 5개월쯤 되겠다.
이름은 초복이. 원주 사는 친누나가 초복날 얻은 강아지라고
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어 놓았다.
누나와 한 달 쯤 살던 초복이는 누나의 자취방에 얹혀살기 힘든 관계로
그 날 우리 집에 왔다.
귀여운 녀석이었다. 작은 수컷 푸들인데, 뭉툭하고 툭 튀어나온 코,
미소짓는 듯한 입이 귀여웠다. 겨우 5~6개월 된 어린 강아지라서
더욱 귀여웠다.
누나를 어찌나 잘 따르던지 어떻게든 누나 옆으로 가려고 안달이었다.
내가 안아주고 있어도 품을 벗어나 누나에게만 가려 했다.
누나가 다시 원주로 올라가던 날에는 하루 종일 낑낑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나는 녀석에게 새로운 누나가 되었다.
내가 학교 갔다 오기만 하면 꼬리가 휘어져라 흔들어대며 반겼다.
아직 어려서 대소변도 못 가렸지만 귀여웠다. 내가 녀석 뒤처리를 다 해 주었다.
녀석은 우리 집에 온 다음부터 몰라보게 크기 시작했다.
처음 입고 온 옷이 꽉 낄 정도가 도로 크자 녀석은 집안의 말썽꾸러기가 되었다.
대소변을 가리게 하려고 가족들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데나 쉬를 쌀 때마다 혼내고 화장실 안에 넣어 놓았다.
그러나 녀석은 좀 컸다고 대소변 뿐만 아니라 온갖 말썽을 부려댔다.
화분을 파 놓질 않나, 쓰레기통을 뒤져 집구석에 쓰레기를 갖다놓질 않나..
내가 수백번도 넘게 때려 주었을 것이다.
목에 줄을 묶어두고 기르면서도 말썽이었다. 녀석을 혼내는게 내 일상이 되었다. 가족들 모두가 녀석을 혼내주었다. 녀석 편은 없었다.
어제, 토요일에 녀석이 갔다. 아빠 친구네 아들이 개를 너무 좋아해서 준다는 것이다. 나도 동의했었다. 말썽만 부리는 녀석을 더 이상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것도 전날인 금요일, 녀석이 하도 심하게 말썽부리는 탓에 어서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토요일날 학교를 갔다왔는데 평소 왈왈거리고 꼬리를 신나게 흔들었을 녀석이 없자 오히려 집이 시원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말썽만 부리는 녀석이었는걸..
오늘은 그립다. 가기 전에 녀석이 좋아하던 소시지라도 사 줄걸.. 그 날 만큼은 때리지 말걸.. 밥도 실컷 먹여주고 목욕도 내 손으로 시켜줄걸.. 막상 후회가 된다.
나는 녀석을 그렇게 미워하고 많이 때렸는데.. 녀석은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너가 가는 곳에는 너를 사랑해 줄 좋은 주인이 있으니 가서 호강하렴.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 가선 너를 미워하던 내 생각일랑 말고 새 주인에게 귀여움 받도록 해야 해. 잘 커야 한다, 초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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