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 team" 제 3회
이 글은 픽션이므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New debut
"따르르르릉...."
아침의 정적을 깨는 시끄러운 소리에 고초열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이 시간에 일어나 보는 것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아마 제대 이후에는 처음일 지도 모른다. 시간은 7시 10분 오늘은 대망의 첫 출근 날이다. 벽에 있는 옷걸이에는 어제 경찰서에서 지급받은 제복이 걸려있다. 왼쪽 가슴부분에는 고초열이라는 세글자의 이름이 너무나도 눈부신 모습을 자랑하면서 재봉되어 있었다.
고초열은 재빨리 세면을 한 뒤 제복으로 갈아입고 방문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오니 현관앞에는....
고미열이 서 있었다.
"오빠, 첫 출근이지."
"..... 그, 그래. 일찍인데 일어나 있었구나."
"이거 받아."
고미열이 건넨 새하얀 두손에는 샌드위치와 우유가 들어있는 비닐 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오빤 고등학교 때도 아침마다 늦어서 밥은 못먹고 이걸로 대신했잖아."
고초열은 봉지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문득 5, 6년전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고맙다. 미열아. 오랜만에..."
"잘 갔다 와, 오빠."
고초열은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이런 상쾌한 아침공기도 오랜만이었다. 거리에는 등교하는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으... 어디야 이거 도대체?"
고초열은 짜증이 이빠이로 난 상태였다. 벌써 5층을 이잡듯이 뒤졌는데 39 강력반이라는 명패가 붙은 사무실을 찾질 못했기 때문이다. 이놈의 인사과장이라는 놈도 아직 출근시간이 안되었는지 자리에 없었다. 안내하는 여직원도 그런 곳은 모른다고 하였다.
'젠장 이거 사기당한 거 아니야?'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국가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역사는.... 뭐 우리나라는 가끔 그런 일이 있기는 했으나 요즘 세상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초열은 다시한번 마음을 진정시키고 39 강력반 사무실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봐요, 순경"
어디선가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초열은 무심코 지나칠 뻔 했다.
'아 참, 내가 순경이지.'
아직 습관이 안 돼서 지나칠 뻔 했으나 현재 순경 제복을 입고 있는 자신을 깨달은 것이다.
"예, 아주머니 절 부르셨나요?"
고초열을 부른 것은 다름 아닌 청소부 아줌마였다.
"뭘 그렇게 찾아 헤매슈. 벌써 세바퀴 째 도는 것 같구랴."
아하, 청소하는 아줌마는 한군데에 있다보니까 고초열이 돌아다니면서 세번을 교차한 모양이다.
"아 예, 신입 경찰인데요. 제 39 강력반을 찾고 있습니다."
"39 강력반이요?"
"예 39."
"허허 이상하네, 여봐 성은이 엄마."
"어? 왜 그래?"
아줌마는 또 다른 청소부 아줌마를 불렀다.
"이리 좀 와봐"
"아이, 귀찮게. 무슨 일인데?"
부름받은 아줌마는 부른 아줌마의 곁으로 걸어왔다.
"이 순경이 길을 찾는데, 여기에 39 강력반이 있나?"
부른 아줌마가 물었다.
"아니.... 가만 있자.... 아닌데...? 여긴 강력반이 6갠가 밖에 없을 건데."
"그렇지? 그렇게 강력반이 많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했지. 순경 총각이 뭔가 잘못알고 있는 거 같애."
이런 젠장.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인사과장님이 분명히 컴퓨터 기록을 보고 나서 저에게 말해 준건데..."
"이힝.... 이상하네..."
"주희 엄마, 대모님에게 물어보는 건 어때?"
"응? 대모님...? 아! 그거 좋겠네. 여보쇼 순경총각, 따라 와요. 확실히 그런 사무실이 있다면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자 어서"
고초열은 어리둥절했으나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저 두 아줌마가 얘기하는 대모님이란 과연 누구일까?
고초열과 아줌마들은 5층 구석으로 갔다. 그곳엔 환경미화원 대기실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 가니 많은 아줌마들이 있었다. 모두 일을 하고 휴식시간에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줌마중 한사람이 대기실에 있던 아줌마중 한사람에게 물었다.
"대모님 어딨어?"
"어이구, 주희엄마 왔네. 대모님 저깄잖아."
가르쳐준 방향에는 또다른 청소부 아줌마가 조용히 TV를 보며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줌마가 아니고 할머니였다. 고초열은 속삭이듯 아줌마에게 물었다.
"저... 저분이 대모님이십니까? 뭐 특별한 분이십니까?"
"특별한 정도가 아니라우 총각."
그들은 대모님이라 불리우는 노파 앞으로 갔다.
"대모님 안녕하세요?"
노파는 고개를 서서히 돌렸다.
"음, 주희 엄마하고 성은이 엄마구만. 옆에 있는 순경은 누군가?"
너무나 음산한 목소리에 고초열은 소름이 끼쳤다.
"아니 이 순경이 제 39 강력반이 어디 있는지 찾고 있는데요. 5층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잘 몰라서..."
순간 노파의 눈빛이 번뜩이는 것을 고초열은 느낄 수 있었다.
"....음.... 39 강력반이라고...."
고초열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저.... 혹시 어디있는지 아십니까?"
노파는 날카로운 눈빛을 고초열에게 돌렸다. 고초열은 순간 호흡이 정지하는 듯한 섬뜩함을 느꼈다.
"그곳은 아무나 드나드는 곳이 아닌데.... 순경은 무슨 일로....?"
이거 심상치 않은데.
"예, 저.... 오늘부터 근무하게 되어서...."
"근무라고? .... 흠 하긴... 얼마전부터 39반이 증원을 한다고 듣긴 들었는데.... 헌데 그 곳에서 일할 만큼 우수한 젊은이같지는 않은데...."
"저... 제가 이래뵈도..."
"이래뵈도 뭔가?"
"이번 특채 모집 수석인데요."
"수석?"
"예, 수석. 수석이라는 건 1등을 했다는 뜻입니다."
주위에서 듣고 있던 아줌마들이 소리를 죽여 웃었다.
"그정도 단어의 뜻 정도는 알고 있네. 날 다른 노망난 노인네들 수준으로 생각하지 말게."
"....예...예.. 죄. 죄송합니다."
이거 한방 먹었구나. 순간 고초열은 그렇게 생각했다. 보통의 노파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자네를 처음 보고.... 신원이 불확실하지 않은가. 뭐 수석합격자라면 그에 걸맞게 증명할 수 있는 특기같은 게 있겠지?"
"트... 특기요?"
"그래. 특기"
순간 고초열은 하늘을 쳐다 보면서 생각했다. 특기.... 특기라.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고초열 자신이 생각하기에 힘쓰는 거 빼곤 재주가 없었다.
'뭐, 무거운 거나 하나 들자'
고초열은 뒤를 돌아 대기실 중앙에 있는 탁자 앞으로 갔다. 그리고 모서리 부분을 잡고 힘껏 들어올렸다.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았다. 한 3초 정도 들고 나니 약간 힘이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제자리에 돌려놨다.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있던 청소부 아줌마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오....저..."
"아이구 순경... 힘 되게 쎄네."
"후후후후후후."
생각만해도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대모라 불리우는 노파의 웃음소리였다.
"좋아... 그 정도는 되어야지. 과연 드림 팀에 들어올 만 해."
드림 팀? 그게 뭐지? 옛날 마이클 조단이 이끌던 미국 농구 국가 대표를 그렇게 불렀던 기억이 나는데...
"자 따라오게 신출내기 순경 양반."
"쿠쿵, 촤---"
여기는 복도도 아닌 것이 통로도 아닌 것이 아주 시끄럽고 지저분한 곳이었다. 고초열은 노파를 따라서 제 39 강력반을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봐 신입순경, 이름이 뭔가?"
"예... 저, 저는 고초열이라고 합니다."
"무슨 이름이 병이름 같군 그래."
"........"
"내 이름은 다슬어일세. 앞으로 어려운 일 있으면 나에게 오도록."
"예.... 예, 알겠습니다."
엉겁결에 대답은 했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오라는 게 무슨 뜻이지? 자기가 해결해 준다는 얘긴가? 기껏 청소부인 주제에?
제 39 강력반인지 뭔지 모르지만 찾아오는 길이 매우 복잡했다. 건물정문으로 들어온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5층으로 가면 안되고 2층에서 내려서 건물 구석으로 간 뒤 우회 계단을 통해 4층을 거쳐 이 곳 동력실을 지나가야 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곳이길래 이렇게 구석중의 구석에 박혀있나 의문이 갈 정도이다.
"자 다 왔어. 이곳이야."
하마터면 그냥 지나갈 뻔했다. 어둠과 연기가 워낙 자욱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곳입니까?"
"그래. 여기가 제 39 강력반이라네."
고초열은 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래도 명패는 있었다.
『꿈의 수사반』
'꿈의 수사반? 무슨 만화영화에 나오는 이름같네.'
"자네는 여기에 근무하게 된 것을 평생 영광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
"이곳에 자네를 배치한 정부당국을 철천지 원수로 생각해야 할 걸세. 꽤 힘들거든. 게다가 아무런 경력도 없는 초보자라면 더욱더."
다슬어는 문을 열었다. 고초열은 다슬어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엔 아무도 없는 듯 했으며 얼핏 본 판단으로는 참으로 가관이었다. 책상, 의자, 명패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때? 깨끗하지?"
'깨끗하긴 깨끗하군.'
살펴보니 고초열의 명패가 놓여있는 책상도 있었다.
"흠, 여기가 젊은이의 자린가 보군. 그럼 열심히 일하시게나. 난 가 볼 테니..."
"가... 가시게요?"
"그래. 여긴 내가 근무하는 곳이 아니잖은가."
"예. 저. 안녕히 가십쇼."
다슬어는 천천히 뒤돌아서 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잠깐만요."
고초열은 다슬어를 불러세웠다.
"뭔가?"
"저.... 전 여기서 뭘 하게 되죠?"
다슬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후후후. 그건 차차 알게 될 걸세. 차라리 모르고 있는 지금이 속편할 테니 너무 서둘러 알려고 하지 않아도 돼."
다슬어는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런 제길. 앞으로 되는 일이 없을 것 같군.'
취직 첫날부터 고초열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뭐 도대체 이런 데가 다 있나 그래.
고초열은 그냥 할일 없이 허공을 쳐다보며 시간을 때웠다. 그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실업자 시절에 늘 하던 짓이니까. 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자 밖에서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필시 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소리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 근처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이윽고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고초열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경찰이 된지 하루도 안된 자기보다는 선배일 것임에 틀림없으니까. 들어온 사람은 사복차림이었으며 나이는 20대 후반인 듯 했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고초열에 의해 약간 놀란 듯 잠시 아무말도 안하고 서 있었다.
"......."
"......."
"......."
"......"
"뉘신지요?"
"아, 예. 오늘부로..."
고초열은 자신의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갑자기 떠오르지가 않았다.
"오늘부로 전입을 명받은 순경 고초열입니다!"
그래서 그냥 군대에서 신고하듯이 말했다.
"에잉? 전입? 금시 초문인데...."
그는 고초열이 앉아 있던 책상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책상도 새로 들어왔네. 명패도...."
뒤이어 다시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으잉? 여, 여자 경찰.
"안녕하세요 추대리님.... 어머?"
그녀는 키가 굉장히 컸다. 고초열은 그녀의 발을 쳐다보았다. 하이힐을 신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자기하고 비슷했다. 게다가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다리도 일품이었으며 얼굴도 수려한 편이었다. 실업자 시절 바라만 봐도 즐거웠던 외모를 갖추고 있는 여자들과 비슷했다. 그녀를 보니 이곳 취직자리가 그리 암울할 것 같지만은 않았다.
"이 순경은 누구예요?"
"아, 전경위, 나도 방금 와서 잘 모르는데 오늘 이곳으로 전입했대."
"전입이라고요? 우리도 전입을 받나요?"
"잘 모르겠어. 하여간 여기에 책상과 명패까지 있으니까 그런가 보지 뭐. 우리라고 부원을 새로 받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다른 부서랑 다를 건 없으니까."
"하긴..."
'이 자들은 사람 앞에 세워놓고 자기들끼리 잘도 지껄이는 군.'
"다른 사람들은 언제 오려나?"
"뭐 좀있다 오겠죠 뭐. 시간은 잘 지키는 사람들이니까."
"......"
"그런데 이상하네. 우리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직원이 보충될 리는 없을 텐데. 안그래요 추대리님?"
저 사복차림의 사나이는 옷도 그렇고 명칭도 추대리인 걸 보니 경찰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왜 강력반에 있지?
"음.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어. 소경정이 오면 물어보지 뭐."
"끼이익"
다시 한번 문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가운 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하하하. 여러분 오늘도 반갑.... 엉?"
목소리가 상당히 활기차군.
"안녕하세요. 위실장님?"
"아, 아 그래 전경위 오늘은 한층 더 이뻐 보이는 군. 그런데 저 친군 누구야?"
고초열은 다시 한번 자기를 소개했다.
"오늘부로 전입을 명받은 순경 고초열입니다!"
"허허. 시원해서 좋구만. 그런데 갑자기 웬 전입이야. 추대리는 뭐 좀 아나?"
"저희들도 실장님하고 똑같은 심정이예요. 있다가 경정님 오면 물어볼라고요."
"쩝. 그러지 뭐."
전경위라는 여자 경찰이 가운을 입은 위실장이라는 남자에게 말했다.
"실장님 또 오래간만에 가운 입었네요."
"어? 아 이거. 나원 또 벗는 걸 잊었군. 길거리를 이러고 돌아다녔구만. 방금전에 보건소에서 진료 좀 도와주느라고... 요즘 의약분업이니 데모니 뭐니 해서 의료인력이 딸리잖아."
"위실장님은 가운입었을 때가 제일 멋있어요."
"후후후. 전경위 왜 이러나. 난 엄연히 처자식이 딸린 몸이야. 그렇게 유혹하지 말라구. 난 내 마누라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안 넘어가."
"어머? 호호."
"그렇게 유혹하지 말고 이쁜 옷 입고 유혹해야 내가 넘어가지. 오늘 끝나고 데이트 어때?"
"호호. 위실장님도."
"실장님 나도 눈과 귀가 있어요. 천사같은 형수님 버리고 외도하면 내가 다 보고할 거요."
"어이쿠, 또 왜 이러시나 추대리. 내가 소주한잔 살테니 방금 건 못들은 걸로 해주게."
'또 한번 느끼는 거지만 하여간 이 자들은 사람 앞에 세워놓고 자기들끼리 얘기하는 걸 즐기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