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민서와 나는 밤하늘을 뒤적였다.
"오늘은 꽤 마시는데?"
맥주 한캔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쓰러져 잠들곤 하던 나였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
인지... 조금도 취하지 않을 듯 했다. 시원하게 몸을 휘감고 지나가는 바람냄새에
흔들리다 평상 위에 드러누워 두 눈을 감았다.
"요즘 난 외딴 별에서 떨어진 우주인이 된 것 같아. 그래서인지 자꾸만 쓸쓸해지
는 기분이야"
"......"
"자니?"
"......"
"짜식 자는구나. 웬일인가 했더니만......"
나의 머릿속은 여전히 맑게 개어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하질 않았다.
"그 형... 사진반 형 말야... "
어쩌다 형 이름만 나와도 무심하게 등돌리던 녀석이... 무슨 일일까...
"나 사실... 그 형 그렇게 죽고 나서 미칠 듯이 힘들었어"
알고 있었다. 애써 들키지 않으려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던 녀석의 모습에서 그
슬픔의 크기는 이미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흐트러져 버리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어.
형의 죽음과 나의 방황... 내게 너무나 낯설었던 그 모를 그리움... 그리고 가슴깊이
추락하던 허전함... 어느 것도 정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묻어두기로 했지. 자꾸
캐물으려 할수록 난 나를 잃어버리는 듯 했고 그건 날 미치게 만들었으니까"
그의 혼란 속에 나도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일어나 무슨 말이든 하려다가 난 계속 두 눈을 감아주기로 했다. 지금 그가 흘리
는 얘기들은 어쩐지 잠이 든 나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비밀스런 사연이 아닐까하
는 생각에...
민서는 하나 둘 풀어내고 있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그의 가슴 속 얘기들을 조
심스럽게 내려놓고 있었다.
"형의 죽음이 나에게 왜 그토록 크게 부딪쳐 왔던 것일까..."
바람은 점점 차갑게 나의 얼굴을 훑어 지나갔다.
"한때는 형의 그 특별했던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 그 낯선 느낌들이 말
야...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형의 특별함 때문이라
기보다 어쩜 그건......"
그렇게 무슨 얘길 하려는 듯 싶더니 이내 지친 한숨소리만 토해내고는 맥주 한 캔
을 모두 비워내는 듯 했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릴 짓거리는 거지......"
어둠은 짙어져 갔고 취기가 오는 듯 민서는 내 옆자리에 나란히 누웠다.
밤하늘에 얼굴을 마주 댄 채 긴 숨을 함껏 뿜어내고는 민서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형을 볼 때마다 느껴지던 그런 혼란스러움을 난 또 누군가에게서 얻어가고 있어.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 굳이 우정이라는
말로 덮어씌우려 들지 않더라도 형과 아우로 묶이고 부모와 자식으로 하나되듯 너
무나 자연스럽게 나의 한구석을 채우고 있는 친구...그랬던 친구를 더 이상 예전처
럼 대할 수 없게 된다는 건... 알몸을 보이며 등을 밀어주던 그런 녀석에게서 묘한
감정이 피어나는 나를 알아 간다는 건 생각보다 참 잔인한 일이더군. 그래 참 잔
인해."
잠꼬대를 하는 듯 늘어놓은 흐릿한 그의 음성들... 이젠 잠이 든 모양이다.
난 조심스레 일어나 취해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엷게 두 볼을 적신 눈물
자욱... 그날 밤 나는 새벽별이 뜨도록 빈 시선을 허공에 던져둔 채 멍하니 평상 위
에 걸쳐있었다. 그의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