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리 띠리리'
"여보 세여"
"나야 서라. 집에 도착했니?"
울고 있는 서라를 바라보다 말없이 카페에서 자리를 비운 터였다.
"아직두 거기야?"
"응. 그냥 좀 더 있다가려구... 생각할 것두 많구..."
얼마나 더 울고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지친 목소리...
"저... 있잖아. 너 방에 민서 일기장이라던가 아님 그냥 끼적여 놓은
낙서종이라도 뭐 좀 없을까?"
"일기장?"
"아니... 그냥 혹시나 그런데라두 지금 민서가 왜 이러구 있는 건지
알 수 있을만한 거... 그런 게 있지 않을까 해서..."
"......"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거야.
...나 여전히 이러고 있는 거... 우습지?"
그녀의 여린 목소리엔 조심스런 떨림마저 느껴졌다.
"아니야. 나두 집에 들어가면 여기저기 좀 뒤져보려던 중이였어.
뭐라도 찾아지면 연락할게"
"......"
"서라야. 이제 그만 집에 들어가."
"......"
저기 나의 하숙집 허름한 대문이 보인다. 칙칙하게 낡아있는 붉은 벽돌의 구옥집...
거기에 붙어져 바람결에 덜컹이는 양철대문이 유난히 더 시들어 보인다. 마치 누
더기 옷을 뒤집어쓰고 비를 맞은 불쌍한 노인네처럼 말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리는 편지라도 찾으려는 듯 나도 모르게 우편함을 뒤적였
다. 오늘도 어김없이 놓여져 있는 엽서 한장...
아닐 거라며... 잠시 조금 혼란스러울 뿐인 거라며...
그렇게 전부를 우겨왔던 것들이
자꾸만 진실이라 울려대며 내 가슴을 헤집고 있다.
이제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것일까...
도망치려 할수록 더욱 더 짙푸르게 베어오는
가슴 쓴 그리움
몇 번을 천천히 읽어보고 다시 읽어보아도 엽서속내용은 나를 미궁 속으로만 빨려
들게 할뿐이었다.
책상 위에 엽서를 던져두려다 사진첩과 나란히 꽂혀진 민서의 허름한 노트가 보였
다. 서둘러 펼친 그 노트는 민서의 일기장이었다.
6월 29일 화요일
며칠을 고민하다 한울이의 하숙방으로 찾아왔다.
가슴이 쿵쿵거린다.
그리곤 이런 기분이 또 다시 나를 끔찍하게 몰아세운다.
...
웅크린 채 잠을 자는 한울이의 모습에도 난 눈물이 나려한다.
7월 16일 금요일
한울이와 서라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나의 시선이 한울이와 부딪힐 때마다
난 어색해진 얼굴로 멈칫거렸다.
이런 내가 바보 같다.
집에 오는 길에 서라가 내 팔에 안겨 물었다.
날 사랑하느냐고...
난...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7월 20일 화요일
어젯밤 혼자 집 앞 포장마차에 앉아 술을 마셨다.
취해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취한 채 살고 싶었다.
날 용서할 수가 없다.
하지만 뭘 용서해야 한단 말인가...
너의 모습들로 가슴 가득 채워진 내가 무섭다.
...
술에 취해 한울이의 사진기를 집어던진 모양이다.
렌즈가 부서져버렸다.
그래도 맑게 웃어주는 한울이...
이제 난 녀석을 보며 웃을 수가 없는데...
...
7월 22일 목요일
여행을 다녀왔다.
어젯밤 한울인 두 눈을 감고 잠든 척 누워있었지만
깨어있었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내가 눕자 한울이는 조심스레 일어나 담배를 피우는 듯 했다.
녀석까지 힘들게 할 필욘 없었는데...
우린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집에 오는 길에 한울이는 말이 없었다.
...
내가 떠나줘야겠다.
어디로든...
그리고 일주일
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일주일 내내 방안에 처박혀 민서를 떠올렸고, 그때마
다 서라의 얼굴이 영상처럼 겹쳐졌다. 그리고 벌써 며칠째 도착하지 않는... 이제서
야 조금씩 윤곽이 잡힐 듯한 그 엽서를 나는 기다렸다.
누구에게도 덜어줄 수 없었을 짐을 가슴 가득 짊어지고 떠난 민서...
그가 어느 곳을 얼마나 헤매이고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지만 다시 돌아온다 해도 이
제 내가 민서에게 어떻게 다가서야 할 것인지... 어떤 친구의 모습이 어울리는 것일
지... 난 어떠한 답안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든 덕에 오늘도 시계바늘이 2시를 훌쩍 넘어선 후에야 난
잠에서 깨어났다. 발 딛을 틈 없이 어지럽혀진 방안... 나의 머릿속 같다.
혹시나 하며 우편함을 더듬어 보았다.
기다리던 엽서가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