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왕자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다고 해요..
늘 그래왔듯이 자신의 존재를 그림자 속에 감추고, 고요한 시선을 왕자에게 두었던 것입니다....
마음 같아선 왕자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고 싶었대요..
그렇지만 그럴 수가 없었대요..
언젠가 왕자님이 소녀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래요...
그의 허락 없이 다신 앞에 나타나지 말라던...왕자님의 말이...떠올랐기 때문..이래요...
숨죽이며 왕자의 모습을 지켜보는 소녀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기는 것만 같았대요...
절망에 빠져 같은 자리를 맴도는 왕자님의 애절한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었대요.
빛나던 왕자님의 위용은 찾아볼 수도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책도 없이 소녀의 심장은 마냥 쿵쿵대기만 했지요..
왕자를 볼 때마다 설레이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대요...
소녀는 왕자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도저히 접을 수가 없었답니다....
'왕자님은 절 찾지 않으실 거죠? 오로지 안개여인만 찾을 거죠? 존재조차도 희미한 신비의 여인만 생각하실 거죠? 언젠가 제 마음을 왕자님께 전할 기회가 올까요? 왕자님을 향한 이내 마음 전하고 싶어요..언제가 되더라도 난, 기다릴 수 있는데... 하지만 왕자님은 절 찾지 않을 거죠? 안개 여인만 생각하실 거죠? 제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하실 왕자님이잖아요...그래도...왕자님이 좋아요...너무 좋아요.. 제 맘 몰라 주신다해도..왕자님의 존재이유만으로도 이렇듯 가슴이 떨리는 걸요..전, 기다릴 수 있어요...왕자님이 뒤돌아볼 때까지 언제까지나 이 자리에 서 있을게요..그냥 이대로 바라보기만 할게요..왕자님이 정말 좋아요. 제 자신보다도 더 아끼는 걸요..그렇게 왕자님이 좋아요...'
소녀는 왕자님의 방황을 바라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그리고 몰래 소리 죽여 흐느끼기도 했구요...
'아~얼마나 괴로우시면...얼마나 마음이 아프시면....얼마나...얼마나...그래도 난 왕자님의 모습을 이렇게나마 뵐 수 있어서 괜찮은데, 왕자님은 그 미지의 여인을 뵐 수도 없으니..얼마나 답답하실까...아! 가엾은 왕자님..그 맘을 알아요..너무나 잘 알아요..안개여인이여!! 제발 당신의 모습만이라도 왕자님께 보여 주세요. 그럼, 우리 왕자님은 아파하지 않을 거예요.. 왕자님은 당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실 거랍니다..안개여인이여!! 그대가 치고 있는 안개의 장막을 걷어줘요..왕자님이 그대를 바로 볼 수 있도록..그대의 장막을 걷어줘요..'
왕자님만을 걱정하는 소녀의 맘도 모른 채, 왕자님은 절망의 나라를 배회하기만 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뒤로 되돌아가지도 않고..그렇게..똑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했습니다...
어느 달 밝은 밤.
왕자님은 부드러운 풀밭에 지친 몸을 누이고 잠을 이루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소녀는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살며시 왕자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깊이 잠들어 있는 왕자의 모습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깊게 드리워진 슬픔의 눈빛을 한 소녀는, 달빛에 드러난 왕자님의 창백한 얼굴을 아주 조심스레 내려다보았죠..
소녀는 왕자님의 길게 내리 뻗은 속눈썹이 달빛에 비춰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는군요...
소녀는 그렇게 하염없이 왕자님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았대요...
어찌나 깊이 잠들었는지..왕자님은 소녀가 왕자님의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했대요.
정말 모처럼 만에 왕자님은 깊은 잠에 들 수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몇 번씩을 깨어나 선잠을 자던 왕자님이었대요..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깊이..깊이 잠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소녀가 왕자님의 곁에 갈 수가 있었던 거래요..
그래서 소녀는 왕자님의 모습을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 볼 수가 있었던 거래요...
"..음..드디어 당신의 존재를...찾고야 말았단 말이야...비로소...이곳에 와서야 .."
소녀는 화들짝 놀랐대요..
소녀는 왕자님의 머리칼로 향했던 손을 황급히 떼며 뒤로 물러났지요.
'왕자님이 깨어나시려나 보다..'
그러나 왕자님은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그래요..왕자님은 잠꼬대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안개여인을 향한 언어가 잠꼬대를 통해 나타났던 거죠...
갑자기 소녀의 얼굴이 칠흑 같이 어둡게 흐려졌습니다..
꿈속에서조차도 안개여인을 생각하는 왕자님의 마음 때문이었어요.
소녀는 다시 왕자님의 곁으로 다가서며 그의 잠꼬대에 가만히 귀기울였답니다.
"안개의 장막을 치고 다시 나타난..여인이여, 난 알고 있었단 말이오..당신의 존재를. 그대가 숨어있어도..난 느낄 수 있단 말이오..왜 이제서야 나타난 거요? 내가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알기나 하오?..난 다시 당신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단 말이오....고맙소..다시 내게 돌아와 주어 고맙소..너무나 오랫동안 그대를 찾아 헤맸지...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와 주어 고마울 따름이라오... "
왕자님은 입가에 엷은 미소까지 띄우며, 꿈속에서 만나고 있을 안개여인에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몹시 놀랐습니다. 자신은 알지도 못한 안개 여인의 존재를 왕자님은 이미 느껴 왔다고 하니 말입니다.
소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대요..왜 자신은 항상 안개여인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요...왕자님은 쉽게 느끼는 그녀의 존재를 왜..자신만은 알지 못하는지....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면 어딘가에 그녀의 존재감을 느낄만한 것이 있어야 할텐데..전혀 느껴지지 않으니..이상할 밖에요....
소녀는 아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답니다.
절망과 체념이 뒤섞인 한숨소리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