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의 표정을 살피는 서라의 모습이 성적표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다.
이제 거의 식어버린 커피를 입안 가득 한 모금 마시고는 그 작고 여린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어 대더니 고해성사라도 하려는 듯 입을 연다.
"너도 알았을 꺼야. ...물론 나도 알고 있었어. 민서의 사랑과 난 별 관계가 없었다는 거 말야.
그렇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 말야. 민서의 모자라는 사랑까지 채우고 있는 날 그가 돌아볼 것이라는 생각에서... 아무 것도... 민서에 대한 어느 것도...
난 놓아 줄 자신이 없었던 거야."
서라는 나의 한마디가 간절했으리라.
아니었을 거라고... 민서는 널 사랑했을 것이라고...
그렇지만 난 그녀에게 위로가 될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첫 만남부터 예고된 비극이었음으로...
서라의 오빠와 우리... 그러니까 민서와 난...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학교사진서클에서 처음 만났다.
사춘기고등학생답지 않은 맑은 피부와 동그란 두 눈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았던 형은
겉모습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세계에 지독히도 빠져 있었던 외골수였다.
중간고사를 보기 며칠 전 고등학생으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무전여행을 감행했던 사건은 수능에 지친 우리들의 갈증을 씻어주기에 충분했었고,
들꽃에 한참 미쳐있었던 언제가 구석진 시골 뒷산을 헤매다 왔다며 커다란 앨범하나를 사진들로 가득 채워왔던 그때...
우리는 그 용감무쌍함에 갈채를 보냈고 그는 더 이상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신화적인 인물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학교에서는 형의 처벌문제로 한번씩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우리 사진서클 담당교사이기도 했던 형의 담임선생님은 퇴학의 위기를 넘기려 무던히도 애를 쓰셨다.
선생님은 형의 천재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민서는 그런 형을 유독 좋아했었다.
녀석답지 않게 민서는 형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질 줄 몰라했고 그런 모습이 내겐 참 낯설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살 가운 표현에는 워낙 인색했던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가 녀석의 가방을 들치려다 그가 찍은 형의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녀석이 그 크지도 않은 두 눈을 부릅뜨며 놀라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읏음이 나오곤 한다.
왜 그렇게 기겁을 하며 사진을 빼앗아 갔던것인지......
학교는 한동안 잠잠했었다.
형이 달라진 것이다.
무슨 결심을한 것인지 사진반에도 오질 않았고 그저 공부에만 열중해 있었다.
형이 대학시험을 앞둔 여느 수험생들과 점점 닮아 가던 사이 한 학기가 저물어 우리는 2학년이 되고 형은 졸업반이 되었다.
그해 학교는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형의 갑작스런 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