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글을 읽고 선배님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 선배님은 저희들의 자랑스러운 거문연 1기 선배님이시죠
그선배는 처음에 성균관대 국어국문과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2년후 다시 시험을봐서 대구대 특수교육학과를 가게되었죠
오늘은 그선배님이 다시 시험을봐 대구대 특수교육학과를 가게된 까닭을
적어볼까 합니다.
그선배님은 성균관대를 다니며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선배님의 자취방은 아주 꼭대기 일명 달동네라는곳에 위치했습니다.
선배님의 자취방은 여러 사람들이 같이 자취하는 자취촌에 가까웠죠.
달동네라고 하면 모두 그렇게 잘사는 사람들은 없을것이라고 봅니다.
역시 그 선배님의 자취가족들도 그러하였죠.
그중 특이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바로 부부 언어장애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부부도 아주 행복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역시 그곳에 있는 자취가족들 모두가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어느날, 그 부부에게도 아이가 생기게 되었죠
아이가 생겨서인지 더 행복한 생활을 하는 부부였습니다.
그것도 잠시,
선배님도 학교생활에 바쁘고 다른 가족들도 자신의 일에 열중하였습니다.
어느날 선배님은 집에 일찍들어 오게 되었습니다.
일찍 들어온선배님은 오래간만에 그부부를 만날려고 그 부부 자취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죠.
아무런 기척도 없었습니다.
문도 역시 잠긴체
선배님은 어디 부부끼리 여행이나 갔을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일을
했습니다.
몇일후 다시 선배님은 그 부부에게 갔습니다.
또 그부부의 방은 기척도 없었습니다.
선배님은 이상하게 생각했죠
그리곤 주인 아주머니께 갔습니다.
그 부부에 대해서 물어 보기위해.......
주인 아주머니도 몇일째 그부부를 본적도 없다해 했습니다.
선배님은 걱정스런 모습으로 그 부부의 방의 문을 부수고 들어갔습니다.
역시나 다를까 그 부부와 아이는 싸늘하게 식어있었습니다.
작은 쪽지와 함께.
그 작은 쪽지에는 이러게 적혀있었죠
\"우리 아들에게 까지 이런 시련을 줄순 없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갈것이 두렵습니다\"
라고 적혀 있었답니다.
바로 언어장애가 유전일까봐 자신의 아이가 힘들게 살아갈게
두려워서 그렇게 했던것이었던겁니다.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격는지
그 부부는 알기 때문입니다.
선배님은 이사건이 있고선
자신이 싫어졌다고 합니다.
자신이 살아가는것도 싫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곤 결론을 내린것이 다시는 그런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격게 하지 않겠다는 사명으로
대구대 특수교육학과를 갔답니다.
지금 그 선배님은 군 복무중이죠
자신이 진정 하고싶고 자신이 해야할일을 찾기까지 많이 시간이 걸린
선배는 26살의 많은 나이로 군대를 가게 되었답니다.
조금있으면 선배님도 재대할때가 되었습니다.^^
보고싶군요
아마 이글을 읽는분들도 몇년전 저 사건에 대해서 알것입니다.
저희 선배님은 그사건을 옆에서 지켜본 목격자였구요
저는 지금 선배의 삶을 존경합니다.
여러분들도 너무나 대학이란것에 억매이지 마시고
자신이 해야할일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땅에 태어나서 해야할일.
바로 사명을 다해야 할것입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짧게 적었습니다 오타나 글의 이어짐이
어색하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