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에게 기대어 한참 울고 싶었다. 내가 유일하게 감정을 내보일 수 있는 건 너뿐
이니까. 그래서 나는 너를 찾았다.
"나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 수 없어. 나를 대표할 지위와 자리가 없기 때문에 말이
야. 세상이 정해놓은 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게 문제가
있기 때문인지도 몰라. 나는 이제라도 그들이 말하는 대로 나를 대표할 거리를 찾기
위해 아무 흥미도 없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야 할 거야."
“넌 너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어. 세상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삶을
살아야 인간다운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건 억지야. 너의 신념대로 지금까지 잘 살아
넌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유난히 더욱 짧아진 단발머리를 쓸어내리며 한동안 내 모
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난 애써 너의 시선을 피하고는 깊은 탄식의 말을 쏟아
내었다.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에는 모두 한심하다고 쓰여 있어. 뭐 저런 애가 다 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차기도 하지. 현재의 나를 두고 비아냥거리는 그들의 소리
가 자주 들려온다. 그들은 나를 그들의 상식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특이 종으로
보 고 있어. 더 이상 그들과 같을 수 없는 인간이 아닌 인간. 미지의 종쯤으로 치부해
버리지. 정말이지 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견딜 수가 없어. 괴로워! 머
릿속에 몽상만이 가득 채워져 쓸모없는 꿈만 꾸는 괴물이 바로 나란 말이야!"
“네가 가지고 있는 꿈이 정녕 쓸모없는 꿈이라고 누가 말하든? 네가 신념을 가지고
꾸는 꿈인데, 그 꿈을 남이 대신 판단하고 감별할 수 있다고 생각해?"
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넌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어. 사람들은 말이야. 언제나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만
말하려 해. '이건 이래서 안 된다. 저건 저래서 안 된다.' 언제나 그렇단 말이지. 그들
이 평생 안정적이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거
야. 그들이 진정 꿈꾸고 있는 것들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것."
나는 너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항상 그래.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성공된 삶을 사는 것은 자신
이 아닌 좀더 특별하고 능력 있는 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자신은 그 대상에서 언제나 제외시켜 놓고 이미 성공한 사
람들의 모델을 바라보며 동경하기만 하지. 그래서 그들은 노력조차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제시하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려 해. 그것이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대중적
인 인간 삶의 형태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말이야."
순간 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너의 얘기에 귀 기울이며 뒤죽박죽이었던 마음을 정리하였다. 너는 나의 안색
을 조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런 내게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빙긋이 웃었다. 아! 너의
그 따듯한 미소가 난 정말 너무나 좋다! 잠시 후, 너는 좀더 큰 목소리로 내게 말했
다.
“난 네가 그들과 같아지는 거 싫다. 내가 널 좋아하는 건 그들과 달리 네가 꿈꾸고
있기 때문이었어. 특이종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꿈꾸는 너. 냉담한 시선과
날카로운 가시와 같은 혀로 네 가슴을 헤집어 놓아도 꿈꾸려는 너. 그런 네가 좋다.
세상의 사람들은 네 인생 대신 살아 주지 않잖아. 그들은 늘 누군가가 꿈꾸지 못하
도록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좌절시키려고 하지. 그들의 습성이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그래. 그러니까 꼭 네가 아니어도 너와 같은 생각을 가진 어느
누구를 보게 되더라도 그들은 너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그랬을 거란 말이야. 그들
은 자신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자신과 같은 삶을 살
아가도록 너와 같은 많은 이들의 꿈을 포기시키려고 안달을 하는 거란 말이야. 너,
그런 그들의 간계에 넘어가 평생을 후회하며 산송장처럼 살아갈래?"
너의 말은 깊은 어둠에 홀로 놓여 있는 사람에게 빛을 주는 작은 등불처럼 나의 어
둔 마음에 새로운 희망의 빛을 밝혀주고 있었다.
“꿈꿀 수 있는 사람은 대중의 사람이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은 보편적인 사상이나 형
태에 어느 정도 무심할 수 있어야 해. 그들의 고정된 생각을 뒤엎을 만큼의 강단도
필요하고 고집스런 의지도 지니고 있어야 해. 진리처럼 보이는 보편적인 사상이나
형태가 꼭 진리인 것은 아니거든. 난 안 된다고 하는 이유를 들어 너를 막는 사람들
에게 네가 몽상가가 아니라 언젠가 실현할 수 있는 꿈을 꾸는 사람이라는 것을 꼭
보여 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너, 늘 내가 좋아하던 그 모습 그대로 된다는 이유
를 찾아서 살아."
나는 너의 얘기를 들으며 다시 세상과 맞서 싸울 힘을 얻었다. 너를 통해 안 된다고
하는 이들의 생각에 반할 힘을 계속 찾을 결심을 했다. 그렇게 투지에 번뜩이는 내
모습을 보며 넌 흐뭇한 듯 미소 지었다.
“어느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배경과 사회적 지위를 보고 그의
됨됨이를 가늠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워. 그렇게 꼭 남이 보아서 내세울 수 있는 명
분이 있어야 인간다운 건가? 하긴, 명분을 위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제시하는 삶 속으로 뛰어든다면 뭐 한동안은 편하고 안정적이긴 할 테지. 더 이상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과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말이야. 그
렇게 사는 게 과연 너한테 행복일 수 있을까? 너는 마치 죽어있는 시체처럼 살아 갈
텐데. 나는 네가 그런 산송장처럼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꿈을 멈추지 않았
으면 좋겠다. 꿈꾸지 못하는 건 죽은 시체뿐이야. 바보야, 꿈꿀 수 없도록 옭아매는
사람들의 말대로 살아가는 것보다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인간다운
인간인 거야."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너만은 나를 바로 봐주니까. 세상 사람들과 같은 시선
이 아닌, 나와 같은 시선으로 봐 주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너의 가슴을 찾았
던 거였다. 나는 오로지 강한 너에게만 투정 어린 투정을 부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줄 거라는 걸 난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역시나 넌
나에게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아니라고 하는 것이,
실은 옳은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모든 비난을 감내하면서 꿈을 이룰 때까지 계
속 꿈꾸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너, 아니? 난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내 꿈은 너의 꿈, 너의 꿈은 나의 꿈. 그러니 우리 함께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도록 하
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