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난 그 책을 손에 쥐고
같은 페이지를 내려다보고 있었죠.
알아요?
당신이 내 앞에서
친구와 함께
맑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설익은 이내 마음
정신없이 뒤흔들어 놓았던 것을.
기억해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난 가까이 있는 당신에게
온통 마음이 쏠려
같은 구절만 되풀이 읽었죠.
알아요?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통에
당신이 혹시라도 들을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들어
얼굴을 가렸던 것을.
얼굴을 가린다고 가슴 뛰는 소리가
없어지는 건 아닌데
바보같이 난 얼굴을 가렸죠.
기억해요?
<제목이 뭐야?> 하고
당신이 내게 말 건네던 순간을.
내 얼굴을 가리고 있는
책표지를 분명 보았을 진대도
당신은 내게 물어왔고,
난 당신이 내게 말을 건넸다는
사실 하나로 긴장하여
꽁꽁 얼어붙고 말았죠.
그리고 바로 책상 위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떨어뜨렸죠.
알아요?
간신히 거꾸로 된 책표지를 내보이며
더듬더듬 <..톨스토이..>라고
말해버린 내게
<아, 그래. 톨스토이구나.>
혹여 무안해 할까
천진하고 투명한 미소를 지어준
착한 당신이었죠.
기억해요?
<앞에서 시끄럽게 해 방해 됐겠다.>하는 당신에게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아니... 아니..> 만 연달아 말하는 나를 보며
당신은 고요히 웃기만 했죠.
알아요?
얼굴이 잘 익은 사과 마냥
붉어진 채로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톨스토이가 웃는다..’
‘..착한.. 톨스토이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