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기분 좋게 들어서던 어느 날 오후, 무영은 창문을 활짝 열어 놓으며 내
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사람은 나를 돌아보지 않아 괴롭고, 나를 원하는 사람은 내가 돌
아서지 않아 괴롭다. 우스운 건 그것이 그렇게 힘들고 괴로운 줄 너무 잘 알면
서도 나를 원하는 그에게 결코 내 마음이 돌아서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열린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하늘은 유난히 높아 보였고, 그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은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나는 창틀에 턱을 괴고 그 날 오후 내내 펼쳐졌
던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무영이는 그런 내 옆에 서서 같은 동작으로 같
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보지 않아 괴롭고 힘든 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
람이 나를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괴로워. 기약 없는 기다림과 고통
일 수밖에 없는 그리움을 안고 사는 아픔을 잘 알기 때문에. 그래서 나를 사랑
하는 사람이 나처럼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래.”
무영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친구. 한없이 우울한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한없
이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도 너무나 어여쁘기만 한 친구. 게다가 내가 만
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하면서 또 가장 유약한 마음을 지닌 특별한 친구. 아
무리 보고 또 봐도 늘 사랑스럽기만 한 친구. 나와 너무나 닮아 있어서 자꾸만
자꾸만 의지하고 싶고, 자꾸만 자꾸만 지켜주고 싶은 친구. 그런 무영이를 누군
가가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난 무영
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싫다. 또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무영
이를 사랑하는 것도 싫다. 다른 이들은 무영이를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
한다. 그러면서도 무영이를 대할 때면 세상에서 무영이를 가장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잘 이해하는 것처럼 속삭여서 무영이를 아프게 한다. 그래서 나는 나
만큼도 무영이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이가 무영이를 사랑한다거
나, 무영이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영이는 늘 나 아
닌 다른 이를 바라본다. 내가 이렇게 무영이 곁에 있는데도 무영이는 늘 다른
곳을 향해 눈을 돌린다.
나를 보지 않는 무영이를 기다리는 나. 그런 나는 해바라기. 무영이가 가는 곳
을 쫓아가는 해바라기. 무영이를 보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무영이. 그런 무영이
도 해바라기. 나 아닌 다른 이를 쫓아가는 해바라기.
어쩌면 이렇게 우리는 사랑하는 것까지도 닮아 있는 것일까. 그거 하나만큼은
좀 다르면 좋았을 건데.
무영아, 다른 이들은 보지도 마. 생각하지도 마. 네가 사랑한다는 이도. 너를
사랑한다는 이도 신경 쓰지 마. 마음 쓰지 마. 그리고 제발.. 사랑하지 마.
“너, 왜 그래?”
상큼한 미소를 짓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무영이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나
를 보는 순간 걱정이 똘똘 뭉쳐있는 모습으로 돌변하였다. 나의 오렌지 빛 단발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무영이의 하얀 손이 보인다. 구름처럼 눈부시게
하얀 손이 걱정스레 내 머리채를 쓸어내린다.
“너, 왜 그래?"
나는 황급히 무영의 손을 떨치며 서슬 퍼런 하늘로 시선을 두었다.
“사랑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네 마음인데 왜 넌 네 마음도 아닌 상대방의 마
음 때문에 힘들어하나 싶어서, 그 생각하느라고.”
나의 말에 무영이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둘 다 내 마음에 들어왔으니까. 내 마음에 들어차서 알아달라고 딸랑딸랑 소
리 나도록 심장을 두드려 대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마음인데도 내 마음 같지 않게 정신없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마치 내 마
음인 듯 그들의 마음도 함께 섞여서 딸랑딸랑 전해오는 거야. 그러면 소리가 울
릴 때마다 가슴이 아프도록 꼭꼭 조여 와. 그래서 네가 말하는 것처럼 사랑을
받는 것과 주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마음까지도 모두 내 마음인 거야.”
무영이는 말을 끝내자마자 허탈한 미소마저 지우고 흰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뭉게뭉게 거품이 이듯 피어오르는 구름이 무영의 눈빛에 금새라도 흩어져 버리
기라도 할 듯 빠르게 그녀의 시선을 피해 도망쳐갔다. 그러나 무영이는 자신의
시야에서 멀어지려는 뭉게구름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갔다. 그런 무영의 표정
은 몹시 서글퍼 보였다. 아마도 구름이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바람의 힘을 빌
어 겁내듯 도망가는 것이 서운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아! 나는 증오한다.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던 무영의 상큼한 미소를 빼앗은 구름
과 같은 그들을. 바람과 같은 그들을. 무영이가 사랑한다던 그들. 무영이를 사
랑한다던 그들. 그리고 그 어느 것도 아닌 나까지 모두 다.
무영이가 구름 같고 바람 같은 그들을 모두 잊고,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
은 채 언제나 편한 친구로 옆에 있으면서 내 사랑을 받기만 하면 좋을 텐데.
무디고 무딘 무영이는 언제나 사랑의 대상에서 나를 제외시키고는 누군가 사
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일을 되풀이 한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
다가 뭉게뭉게 바람과 함께 사라져가는 그들에게 변하지 않는 진심을 주며 눈
이 빠져라 고개가 꺾어져라 한없이 올려보고 지켜보고 끈질기게 쫓아가는 일
을 숨도 차지 않는지 되풀이 하고 또 되풀이 한다.
“사랑하기 힘들다."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무영이가 시선을 돌려 내 어깨를 다독이며 우울한 어
조로 말했다.
“사 랑 하 기 힘 들 다"
나는 무영이가 무심결에 내 뱉은 말을 자동인형처럼 따라 해 보았다. 무영이
의 구름 같은 손이 몇 번이고 내 어깨 위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사그라지며
주문처럼 한 마디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 랑 하 기 힘 들 다”
나는 순간 구름인간이 된 무영이를 보며 뭉게뭉게 사라져갈까 두려워 구름 손
을 꼭 쥐고 말했다.
“사 랑 하 기 힘 들 다. 사 랑 하 기 힘 들 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구름 해바라기. 무영이도 구름 해바라기. 우린 어긋
난 사랑만 하는 닮은 꼴 구름 해바라기.
국어사전님께 다음 카페 "작가지망생"을 추천합니다. "작가지망생"에서 소설방 가셔서 네임찾기로 "튜니스"하시고 그녀의 "원더랜드의 시지프스" 를 읽어보시기를 적극 권유합니다. 제가 이렇게 무례하게 [권유]라는 단어를 쓰게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국어사전님께서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입니다. 제가 추천할 자격도 없지마는, 튜니스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소설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08.17
글자님, 발자국 찍어 주셔셔 고맙고 반갑습니다.^^
오렌쥐 정말 오랜만이네. 나는 요즘 잘 살고 있어. 오렌쥐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얼마나 멋져졌는지 궁금하네.
언제 기회되면 얼굴 한번 봤으면 좋겠다. 날 더우니까 시원한 가을쯤에 한번 어때?
애플파이님 감사합니다. 제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다른 이의 작품감상도 중요함을 잘 아는 저로선
애플파이님의 남다른 관심이 감사함은 물론이려니와 무척 고맙습니다. 님께도 늘 좋은 하루가 되길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