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아다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소설집 차례에서 '백치 아다다'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중국말 같은 것을 한글로 표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고는 그것이 바보를 뜻하는 '백치'와 그 바보의 이름인 '아다다'를 합성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고, 작가가 독자들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처럼 재미있는 제목을 지었다고 생각했다. 나도향 씨가 '벙어리 삼룡이'를 쓴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벙어리인 아다다의 기구한 운명을 나타낸 작품이다. 벙어리인 아다
다가 시집 갈 나이가 되어도 시집을 못 가자 그녀의 부모는 땅을 얹어 주면서 노총각에게
시집 보낸다. 처음에는 시집 식구들 모두가 아다다를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지만 차차 돈을
벌어감에 따라 남편은 아다다를 구박하게 되고 아다다는 집으로 도망쳐 온다. 집에서도 반
기질 않자, 아다다는 그녀에게 잘해주는 수롱이만을 의지하게 되고 그와 함께 외딴 섬으로
가서 산다. 그러나 수롱이에게 모아둔 돈이 있고 그 돈으로 땅을 산다는 말을 듣고 아다다
는 이전 남편처럼 자신에게 구박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 돈을 바다에 버린다. 이를 본 수
롱이는 화가 치밀어 아다다를 물에 떠밀어 죽이게 된다.
'백치 아다다'에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물질 만능주의의 비판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난 이 소설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일부 문학 작
품들은 예술성을 높이기 위해 어려운 어휘를 사용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숨기는데 반
하여 이 작품에서는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쉽고, 그래서 심성의 변화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
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난해한 작품이 안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읽을 때마다 점점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고 그 속뜻을 추리해보는 재미도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는 것 같다.
아다다를 통해 작가가 비판한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에는 물질 만능 주의가 너무 팽배해
있다. 요즘 언론을 통해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는 부유층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이 뭐가 문제냐며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부유층만 그런 것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들도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세배할 때 덕담
대신에 세뱃돈을 선호하는 것이나 돌잔치 때 금반지를 선물하는 것, 또한 부모님께 효도관
광 등으로 효를 대신하려는 경우 등 마음의 선물보다는 물질을 추구할 때가 많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 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깨달음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이 참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신체적 불구자인 아다다는 물
질적인 풍요보다는 사람 사이의 애정과 조촐한 행복을 바라고 또, 만족하였는데 나는 온전
한 신체와 비교적 넉넉한 물질적 환경에도 만족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 또한, 내
심으로는 세배를 하고 돈을 받고 싶어하고 눈에 보이는 값비싼 선물을 받았을 때, 기뻐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러한 것을 보면 아직도 나는 고쳐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
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또한, 수롱이를 통해 물질 만능주의의 궁극적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수롱이는 마지막에 돈 때문에 아다다를 죽이게 되고 자신의 돈도 잃는다. 작가는 이를
통해 물질 만능주의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다. 이제부
터는 가능한 한 물질에 대한 탐욕심을 자제해야 하겠다. 물론 나도 인간인 이상, 완전히 물
질 만능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 노력해 본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끝으로,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벙어리의 말투를 재미있게 글로 나타내었다는 점과 옛
사람들의 말투와 방언을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아다다의 어수룩하면서도 천진한 모습
을 잘 묘사한 것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부분 중 하나이다. 계용묵 씨는 이러한 신체
불구자의 내면적 순수함을 다룬 작품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읽어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