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린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 발 또 한 발 아무 생각 없이 배회하다가,
보았다. 천지사방간이 툭 터진 널따란 벌판, 외롭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그리고 따가운 햇볕과 이따금 퍼부어 대는 소나기, 꿈이다, 아무도 없다, 손 뻗어 내딛는 것은 지난 밤의 아득한 꿈자국뿐, 돌아서야 한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되돌아 나오는 길은 걸어 들어간 길만큼의 부피다. 산다는 것이 늘 그러하거늘, 시가 되지 않는 일상을 시로 쓴다는 것은 그 부피만큼의 고통이다. 누군들 가슴에 얼병들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그의 글들은 내밀한 아픔들을 안으로 갈무리한 채 파릇하게 돋아나는 희망들을 잔잔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 시편들의 묶음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했다. 무엇이 시가 되는 것인지, 시란 어떻게 써야 되는 것인지 자답하면서 말이다. 견고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섬세한 표현들이 축 늘어진 신경세포를 일으켜 세웠다. 오랫동안 지병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와 말없이 고통을 감내하는 우리들의 어머니,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는 화자의 감정이 공간을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아버지 14\"에서 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낯익은 풍경 아닌가
구기작거리며 벌러꿍 살아버린 아버지와 구겨진 아버지의 일상을 다리미로 반듯하게 펴고자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가 늘상 보아왔던 바로 그 모습이다.
-느그 아부지 벌러꿍 살아야~-
봄이 오면 온 지를 아냐
좋은 옷을 보면 입고 싶을 줄 아냐
맛난 것이 뭣인지나 아냐
벌러꿍 삶을 살아야 벌러꿍 세상을.
-느그 아부지 벌러꿍 살아야~-
곱게 닦달해주면
구기작구기작 세월선을 그어 다니다
들어서는 아버지 앞으로
엄마는 다리미 되어 서신다.
정작 뭣이 좋은지 뭣을 해야하는지
마음 한 조각도 내버릴 줄 모르는 큰 딸년
청매화 피인 꽃봄 위로
희퍼런 눈물 떨구며 숨죽여 웃다가 울다가.
구기고 구겨지는 것은
아버지 삶만이 아니라고
꽃바람이 속삭이며 볼을 뒹군다.
-느그 아부지 벌러꿍 삶을 살았어야~~~~-
비그르르
비그르르
눈자위를 휘돌고 나가는 눈망울에
독한 기운으로 떨궈진다.
삶의 비늘.
\"대신 우는 비\"에서 그는 얘기한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버티면서 울어봐 이젠, 너도 살아 봐\".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오랜 울림이다. 세상을 깊이를 가늠하는 시력, 삶의 무늬를 날실 씨실로 엮어내는 능력이 참으로 비범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