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전 오토바이 운전자였던 최철환은 자신이 병원 응급실에 뉘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머리에 손부터 얹는다. 목을 이리 저리 기울여 보기도 하고 침대보를 천천히 걷어 올려 허벅지와 무릎, 발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살핀다.
\"호오!\"
한참 뒤, 저 홀로 내쉬는 한숨이 무겁다.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 온몸의 피돌기마다에 가득하던 그 죽음의 공포들이 입을 통해서 한 순간에 내쏟아지고 있으니 차마 각혈인양 검붉고도 무거운 한숨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안경수는?\"
최철환은 부지불식간에 고개를 비튼다.
\"아!\"
그는 입을 덜덜 떨면서 비명소리를 뱉는다. 뒷목에서 이마에 이르기까지 머리털이란 머리털이 일시에 곤두선다. 자신의 삶을 확인한 뒤에야 아스팔트에 머리를 찧고 쓰러진 충격을 몸서리쳐 느끼는 그다. 고통의 맛을 깨물어 삼킨 뒤 목을 움직이는 것조차 거북이 머리를 내밀 듯 했고 눈동자를 굴리는 것 역시 거북이 발에 보듬어지는 알처럼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아침부터 안개가 이리 껴가지구!\"
눈에 들어와야 할 의식의 피사체마다 알 수 없는, 어쩌면 그 어떤 분말을 뿌려놓은 듯하다는 느낌. 아니 정확히 안개가 자욱하다는 생각과 함께 오토바이를 같이 탔던 안경수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겹겹 안개의 두께를 더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실 아침이 아닌 밤이다. 밤낮없이 밝혀지는 중환자실의 형광등들이 밤의 아침을 만들고 있다 뿐이지 분명 밤이다. 별조차 도시의 두꺼운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 밤. 아니 밤마다 반짝거리는 별을 멀리 밀어낸 도시가 그래서 더더욱 어두워진 밤.
최철환의 의식이 밤과 낮을 분간하고 또 얼마 전 자신의 등뒤에서 생명의 입김을 토하던 안경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그의 거북이 머리는 오랫동안 너울거려야 했다.
\"저, 안경수란 사람도 응급실에 와 있을텐데요?\"
궁금한 나머지 자신 옆으로 바삐 지나가는 간호원의 팔을 잡는다.
\"아아!\"
최철환은 간호원의 허리에 자신의 팔이 부딪치면서 손끝에서 머리끝으로 전해지는 고통을 감당하느라 눈매가 온통 모가 진다.
\"죄송합니다. 제가.......\"
최철환의 비명소리에 놀란 간호원이 뒤를 돌아보며 서둘러 말한다.
\"네 방금 저한테 뭐라고 물어보셨어요?
\"아, 저 아까 오후 늦게 저랑 같이 실려 온 안경수란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혹시 어디 있는지 아는지?\"
\"예, 잠깐만요. 환자 명단을 확인해 보고 알려 드릴께요. 아니지 그러니까.\"
간호원은 안내 데스크로 발길을 돌리려다 말고 재빨리 돌아선다.
\"안경수 환자는 지금 신경과 중환자실로 옮겨졌는데요. 선생님과는 다르게 뇌출혈이 안에서 진행된 상태고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의식이?\"
\"네, 교통사고 환자가 특히 조심해야할 것은 머린데 머리를 심하게 다치셨으니.......\"
최철환은 말을 마치고 돌아가는 간호원을 더 이상 붙잡지 못한다. 이 순간 자신과 안경수 간에 맺어져 있던 인연의 끄나풀 하나가 풀리기 시작하여 그 끝을 알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일어서서 응급실을 문을 나서고 신경과 중환자실로 올라갈 수 없는 처지이며, 인연이 다하기 전에 온기 어린 손이나마 잡을 수 있을 지 알 수가 없다는 불안감이 자신을 침대 위에 가로놓이게 만든다.
최철환은 응급실 천정 여기 저기에 매달려 있는 형광등에 녹아내려 무게를 더하는 밤기운을 마시면서 안경수에 대한 생각에 젖는다. 결코 순탄한 길을 걷지 못한 자신을 다시 과거의 길 위에 세우고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