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안경
류인혜
안경을 다시 고쳤다.
방바닥에 둔 것이 밟혀서 찌그러졌기에 동네의 안경점에 가서 폈는데, 왼쪽 편 안경알이 또 빠졌다. 아쉬운 대로 실로 고정을 시켜서 사용하다가 결국 빠져버려서 안경점에 가서 테를 새로 바꾸었다. 안경은 눈이나 다름이 없는데 간수를 소홀히 했다.
안경이 없으면 글씨를 읽기 어렵다. 돋보기는 쓴 지 오래되어 당연히 사용하는데, 이제는 난시가 있다고 평상시에도 안경을 착용하라고 해서 새로 만들었다. 새로 맞춘 안경은 테가 없다. 유행에 따라서 색깔도 넣었으니 안경을 쓴 멋쟁이가 되었다. 그러나 마음은 심란하다. 안경만 바라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서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아버지는 68세에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돋보기를 쓴 모습을 본적이 없다. 함께 살지 않은 탓도 있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늘 건장한 중년의 모습이 입력되어 있어서 돋보기를 쓰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도 못했다. 자신이 불편한 것만 대단하게 생각했던 무심한 딸이다.
오래 전 아버지께서 하늘로 가시던 날, 배웅을 하려고 친구 분이 추모 글을 써서 오셨다. 요즘은 만장을 들지 않으니 그저 간직하라고 주셨다. 산역을 하는 동안 가까이 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더니 보너스처럼 두 장의 사진을 꺼내 주셨다. 상주에게 주려고 했는데 딸이라도 가지라며,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찍은 생전의 모습이라 했다. 친구 분들이 모여서 아버지를 만나러 오셨던 길에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거기에서 안경을 쓰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안경을 쓰셨네요\" 하고 놀라니 눈이 나빠져서 잘 읽을 수 없다고 해서 돋보기를 사 드렸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말년의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친정이라고 자주 가보지도 못했으니 아버지에게 무심한 나쁜 딸이 된 것이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그 친구 분이 \"법도가 엄한 시댁에서 지냈으니 할 수가 없었겠지\"라는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숨이 막혀서 그 자리에서 넘어갔을 것 같았다. 통한의 눈물을 아무리 흘려도 세월은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법이 아닌가.
장례 다음 날 동생들이 아버지께서 쓰시던 방을 도배했다.
삼우제 지내면 다들 흩어질 것이니 손이 있을 때 해야될 일을 하자고 시작한 것이 도배였다. 구경 삼아 방안을 기웃거리는데 방 안쪽 장판에 콩알만한 검은 점들이 점점이 줄을 이어서 찍혀있다. 처음에는 무엇이 묻어 있는 것이라 여겨 걸레로 닦으라고 했더니 아버지의 담뱃재 자국이라고 대답했다. 무슨 말인가 궁금해서 널려진 종이 사이로 기어서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동그랗게 탄 자국이다. 담뱃재를 털 때와 꽁초를 버릴 때 재떨이를 찾지 않고 무턱대고 비벼서 끈 것이다. 아이들 장난처럼 누워서 손을 뻗는 위치마다 검게 탄 자국을 남기셨다.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져 마루바닥에 덥석 내려앉았다. 임종하셨다는 전갈을 듣고 나서부터 쉴새없이 터져 나오던 울음이 조금 진정되었는데, 다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린다. 아버지, 불쌍한 아버지, 가슴이 미여져 고통스러웠지만 그칠 수가 없었다. '왜 돋보기 하나 사오라는 말씀이 없으셨어요.' 넉두리가 나오는데 전혀 말이 되지 않았다.
친구 분이 사 주신 돋보기는 한 달쯤 사용하셨다고 했다. 세상과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아버지는 말년의 한 달 동안만 밝은 세상을 보시다가 간 것이다.
아버지는 내 문학의 기초를 닦아 주셨다. 그 분을 통해서 깊은 지식의 세계를 일찍부터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기 어려웠던 다른 세상을 책을 통해서 먼저 구경했다.
글을 읽게 되었을 때부터 아버지가 구독하시는 잡지를 틈틈이 호기심을 가지고 보았다. 특히 <사상계>는 한자를 빼고 읽었는데, 그곳에 실린 수필들이 유일하게 한자가 섞이지 않은 글이라서 그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지성들을 대하고 수필을 만났던 것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사주셨다. 더 넓은 세상과 꿈을 가진 사람이 이루는 희망을 배웠다. 다른 나라에도 사람들이 입고, 먹고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문화의 근원이 지혜로운 사람으로 인하여 생겨나게 된 것을 배웠다. 많은 것을 알아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바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 분과 아무것도 함께 한 것이 없다.
결혼을 하여 공식적인 어른이 되어서도 내 아이들만 눈에 들어와서 부모님께는 건성이었다. 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고, 좋은 옷을 사서 입히고, 팔이 아프게 시장을 봐다가 밥상을 차려 주었다. 친정의 부모님이 먹는지 입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고향에 자주 내려가는 동생들에게 맡겨버렸다. 아무리 동기간이 많고, 내리 사랑이라고 해도 너무 무심했다.
아버지께 더욱 죄송한 점은 새로 맞춘 안경이 큰아이가 어버이날의 선물이라고 사 준 것이다. 아버지의 딸이 늙어서 안경을 쓰지 않고는 지낼 수 없게 되었는데, 생전의 아버지는 딸보다 훨씬 많은 연세에 돋보기없이 지내셨다고 하니, 신문은 어떻게 읽고 책은 또 어떻게 읽으셨을까... 안경을 대할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 마음이 불편해져 전전긍긍이 된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검정 콩 자국 같은 점이 촘촘히 그려진 방바닥에 대한 그 기억만은 더 생생하게 떠올라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하나님께 우리 아버지 안경하나 구해 드리라고 편지를 썼다. 아버지께서 자랑스럽게 여기던 똑똑한 딸이 마음 편해지려고 머리를 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습게도 새로 바꾼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안경다리가 또 고장이 났다. 당분간은 한쪽 다리가 없는 안경을 쓰고 불편해도 벌을 받는 기분으로 지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