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 등에 업혀 건너온 강
최 복 희
낙농을 천직으로 삼고 살다가 체력의 한계가 와, 얼마 전에 어쩔 수 없이 젖소들을 모두 팔아버렸다. 그것들과 헤어진 지 한 달이 지났건만 함께 한 습관들은 쉽게 변하질 않는다. 이른 새벽에 잠이 깨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그 시간에 할 일이 없어진 우리 내외는 뒷동산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다.
대문을 나서는데 집유차(集乳車)가 거북이 걸음으로 지나간다. 못할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가슴이 흠칫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집유차는 30여 해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리 집에 들렸었다. 집유차가 도착하면 즉시 냉각기에 전원을 끄고, 그날에 생산된 우유를 흡입기로 빨아내느라 부산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멀어져 가는 집유차를 바라만 보게 되었다.
회색 빛 장막이 서서히 걷히는 이른 새벽, 바짓가랑이로 길섶에 맺힌 찬이슬을 털며 산을 오르는 기분은 상쾌하다. 순진무구하고 우직한 소의 성품을 닮은 남편은 말 한 마디 않고 앞서간다. 나는 그 뒤를 따라 가며 주위를 둘러보고 사색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직업이 낙농인 사람은 정년도 없고 타인에게 구애도 받지 않는다고 우리를 부러워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은 연중 무휴에다 고된 노동을 요하기 때문에 그들이 부러워하는 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일에서 벗어난 우리도 여느 직장인들과 다름없는 정년퇴직을 한 셈이다.
아쉽기도 하고 홀가분도 해 만감이 교차된다. 희망 찬 인생의 강을 다 건너온 느낌도 들어 한편 허허롭기도 하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자식처럼 기르던 젖소들을 떠나보내며 겪는 아픔이었다. 서운함을 줄여보려고 한 마리씩 내보내다가 마지막에 10여 마리를 한꺼번에 보내던 날은 가슴이 뻥 뚫린 심정이었다.
텅 빈 축사에 서서 넋을 잃기도 하고 팔려가던 날, 차에 오르지 않겠다고 앞발을 버티며 꽁무니를 빼던 녀석들의 모습이 떠오르면 가슴이 아려온다. 정을 주고 기르던 짐승들과 회자정리(會者定離)란 의미도 되새겨 보게 된다. 하지만 나는 왠지 젖소들이 우리 곁을 떠났어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것 같다.
긴 세월 동안 우리가 젖소들을 기른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였다고 여겨진다. 그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서 울고 웃고, 지혜와 도리를 터득하고 또 의,식, 주는 물론 기타 제반 경비를 젖소들이 모두 대 준 셈이다.
앞으로 우리가 노후를 편히 보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 한 것도 그들 덕이니 잠시인들 잊을 수가 있겠는가.
팔려간 우리 소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새 주인과 낯을 익힐 때까지 겪어야 할 고통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언젠가 젖소들을 남에게 잠시 부탁하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돌아와 보니 낯가림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사료도 안 먹고 젖을 내리지 않아 한동안 애를 먹인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우리는 하루도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었다.
새벽부터 젖소들을 돌봐야 하는 일이기에, 뒷동산에 기대어 살고 있으면서도 새벽에 산책 할 겨를이 없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쉬엄쉬엄 산을 오르다보니 정상에 다다랐다. 아무도 없어 빈집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숨을 고르며 가벼운 맨손 체조를 하고 바윗돌에 앉았다. 숲 속의 주인이 되어 풀벌레들과 산새들의 합창을 듣는다. 그 소리는 청낭하게 산을 울린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유다.
남편은 양쪽 소나무 사이에다 매어 놓은 철봉에 매달려 한쪽 다리를 걸치고 한바퀴 훌떡 돈다.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앞머리가 훤히 벗겨진 이순의 모습이지만 그 행동만은 청년이다. 낙농으로 인해 우리의 몸은 지쳤는지도 모른다.
나는 통증이 오는 어깨를 주무르며, 허리 조심하라고 남편에게 한마디 건넨다. 젊은 마음만 믿고 재차 몸을 놀리는 그의 얼굴 표정은 재주를 부리는 천진스러운 아이 같다.
다시 일어나 마을를 내려다보며 내 삶을 돌아본다. 그동안 우리는 젖소 등에 업혀 인생의 강을 건너 왔다고 생각된다. 그 길에서 부귀영화나 명성을 떨치는 벼슬을 얻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겐 아쉬운 게 없다. 다만 인간답게 사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었다.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듯이, 동물을 좋아하는 우리가 낙농을 천직으로 택해서 그 일에만 종사하며 살아온 것은 행운이라 생각된다. 누구나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게 되기도 어렵지만 그 일을 끝까지 감내하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문득 0선생님이 생각난다. 30여 해를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퇴직을 앞두고 얼마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 스승의 길을 만족해 하셨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다 가셨기에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나는 내 아이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직업을 선택해 그 일에 정성을 다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
떠오르는 해를 뒤로하고 산 그림자 속으로 내려오다 보니 우리 집이 훤히 보인다. 전에는 아이들이 엄마! 하고 부르듯 젖소들이 우리 쪽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는데, 텅 빈 젖소들의 운동장을 보고있으려니 눈앞이 흐려온다. 헛디뎌지는 발걸음을 옮겨놓으며 헤아려 본다. 떠나보낸 젖소들을 그리워하며 내가 건너가야 할 인생의 강은 과연 얼마나 남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