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던가.
나의 기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제는 거짓말에 면역이 생겨서 어쩌면 의무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양심도 사라져버릴것같은
두려움에- 기도를 하는 것일런지도..
그 해 6살의 크리스마스를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주워 온 아이인줄 알았었다.
내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부모님은 언니를 훨씬
이뻐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 유일하게 생생하게
기억나는것이 있다면, 포근한 이불 잠자리에서 늘 부모님
품사이에서 잠이 들곤 했던 언니의 모습이다.
늘, 방의 가장 구석진 자리였던 긴 옷걸이 밑에서
그들의 모습을 노려보며 잠이 들었었던 어린 아프리카
소녀 였었다. 그 소녀의 가슴에 무엇이 남았겠는가?.
남는 건 그시절, 그 나이에도 쓰라렸던 외로움이었고,
따뜻한 시선이라도 애절했던, 빈 마음이었다.
채워야 했다. 배가 비면, 밥이 들어가 그 자리를 채우듯,
채워야 했다. 더구나, 상처 난 빈 마음이라,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강한 소화액은 더더욱 쓰라렸으리라.
아버지 돈을 훔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침을 먹는 시간,
소녀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버지의 남색 주머
니를 뒤진다. 혹, 손에 5000원이라도 잡히는 날은 운 좋은
날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제일 먼저 뛰어가는 곳은
동네 문방구이다. 동네 문방구에서 나는, 평소에 사고싶었
던 것을 샀고 아침을 먹지 않아도 하루종일 배가 불렀었다
하지만,빈 마음은 더더욱 골이 깊어만 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친한 친구가 엄마가 사준 것이라고
자랑하던 50여가지의 색깔의 크레파스 세트가 갖고싶었다.
소녀는 하루 하루 아버지의 남색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6살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던 날.
드디어 아버지 주머니에서 훔쳐서 모아 둔 돈으로,
크레파스 세트를 사게 되었다.
크레파스 세트가 조금만 작았다면 소녀의 이 거짓말은
완전 범죄가 되었을 지도 모르건만 문제는....소녀 키의
반은 되었을 만한 크레파스의 크기였다.
결국, 그날 오전, 언니는 의문의 크레파스를 발견하게
된다.
\" 언니, 제발...비밀로 해줘.\"
나의 표정이 절실할만큼 꽤 불쌍했던 모양이다.
그때 언니는 알았다고 했었고, 크리스마스라서 아버지
께서 작은 화분에 아주 예쁜 소나무를 사가지고 오시던
그 저녁에 나는 죽도록 엄마에게 맞아야만 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저녁은 유난히도 시리웠다.
엄마는 다그치면서 몽당 빗자루로, 사정없이 작은 몸을
내리쳤다.
\"절대로 울지 않을꺼야\"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힘껏 물었다.
그러나, 결국 목구멍에서 작게 부풀어 오르던 붉은 울음은 끝끝내 아버 께서 트리용으로 사오신 청빛 소나무잎에 걸려 터뜨려지고 말았다.
절대로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그 악하게 도도라진
마음들이 실타래를 풀어 놓듯, 몽당 빗자루에
하나, 둘...풀리면서 그날 밤 , 일년을 기다려온
크리스마스날에 나는 끝없는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끝없는 울음은 아마.. 몽당 빗자루에 의한 아픔이라기
보다는, 아마 부모님 조차도 돌보아 주지 않았던 상처 난 빈 마음을 어리석게 \"거짓\"으로 채우려고했던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