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것은 꽤 많이 보았다. 인기연예인들이 바들바들 떨며 뛰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도 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수없이 많이 봤지만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것이 구름 없이 맑은 하늘이든, 군청색의 밤하늘이든.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가끔 희미하게 비행기가 날아가기도 했다. 그 비행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비행기를 내 눈 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다. 저 비행기는 모든 이의 머리 위에서 콧대를 높이고 날아간다. 거만하기 짝이 없지만 나는 그런 비행기를 좋아했다.
어느새 나는 '비행'이라는 것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날개를 달고 푸른 하늘을 휘저으며 날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하늘과 여전히 내 머리 위에서 날고 있는 비행기를 보면서.
참으로 부질없는 공상이고 쓸데없는 시간낭비였다. 하지만 그렇게 나 자신을 질책하면서도 날고 싶다는 소망은 더욱 커져갔다. 혼자 걸을 때면 항상 하늘을 바라보고 걷곤 했다.
저 하늘 속에서 헤엄칠 수 있다면. 가끔 피곤해질 때 그런 생각을 피로회복제로 쓰곤 했다. 비행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아무리 힘이 드는 때라도 웃음이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만큼이나 나는 것에 대한 모든 것을 좋아했다.
파일럿이 되고 싶다는 것과는 달랐다. 비행기라는 매개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 날개를 파닥거려 날아보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너무 높았다. 비웃기라도 하는 듯, 영원히 키가 커도 닿지 않을 곳에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한낱 작은 곤충들도, 우리 집 새장 속의 새도 날개를 갖고 있다. 그들은 언제든 높이 날 수 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그러한 미물들을 하찮게 여기고 있는 나는?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 할지라도, 저 하늘을 자기 집 마당처럼 뛰어다닐 수는 없을 것이다. 병아리가 아무리 파닥거리며 날개짓을 해봐도 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비행에 대한 공상을 한지 꽤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래서 상상하는 것을 조금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줄어도 그것에 대한 갈망은 내가 숨쉬는 시간만큼 더 많아졌다.
최근에-날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TV에서 본 번지점프는 잊지 못할 것이다. 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아래로 뛰어도 다시 위로 오르는 모습이 마치 나는 듯 했다. 일순간이었지만 하늘과 더 가까워져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비행을 동경하는 이유가 그것이 아닌가 싶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여유. 날개를 갖고 싶다. 이것은 내가 좀더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을 내 바램이고 욕심일 것이다. 왜나하면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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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싶다...
누구든 한번쯤 생각해 봤을 테죠.
이런 마음을 이것밖에 표현못하는 게 안쓰럴 뿐이져...
09.03
참 멋진 글을 읽게 해 주신 물빛구름님!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근사하게 표현하셨습니다. 진심으로 본받고 싶습니다. 아래로 뛰어도 위로 오르는 삶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