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기숙사에 남아있는 엔트리 넘버 20 안에 당당히 들었다.
어제 기숙사를 떠나는 선배가 물려준 간장과 고추장,식용유, 참기름, 소금, 다시마, 다진 마늘, 떡, 새우와 멸치, 냉동밥, 커피믹스 생각에 아침에 눈을 뜨면서도 배가 불렀다.
뭘 해먹나, 하다가 점심에 떡볶기를 신나게 혼자 해치웠고 남은 국물을 버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얻은 고추장인데...
결국 저녁에는 거기에 밥까지 볶아 먹고 설겆이를 했다.
그렇게 점심 저녁 해 먹고 낮에 도서관에 잠깐 들렀다가 돌아와서 책을 읽고 커피믹스도 타서 마시고 혼자 영화도 두편이나 보고 나니 하루가 금새 지나버렸다.
나의 2009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았다.
그러기 위해 나는 전날부터 오늘의 할 일을 생각했나보다.
새해 안무 문자와 전화가 오갔다. 낮 잠도 안잤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뭐, 이렇게 된 거 종소리나 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를 켜려다가 어쩐지 이 종소리를 혼자 들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휴게실로 내려갔다.
20명 중 5명이 내려와 점퍼입고 모자까지 쓰고 띄엄띄엄 앉아있다.
참 어떻게 뒷모습만으로도 그렇게 어색할 수 있는지.
그 그림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쩐지 좀 아니다.
운동실로 갔다.
한명이 자전거 페달을 굴리고 있었다.
나는 러닝머신위로 올라가 스피드를 2.0으로 두고 겨울 코트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썼다.
학교가는 걸음보다도 늦은 속도로 어기적 어기적 걸으며 틀어져 있던 가요대전을 봤다.
한해 동안 꿀벅지 꿀벅지 야단 법썩을 떨던 에프터스쿨이 군복 비스무레한 차림으로 나왔다.
아, 아마 분명 이번 곡 끝나고 옷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이겠지.
생각이 들기 무섭게 옷이 찢겨져 나가고 에어로빅 복장으로 나타나 꿀벅지를 드러냈다.
어기적 어기적 걷다보니 어느새 2009년의 카운트다운에 도착해있다.
5,4,3,2,1- 팡팡팡~
새해에는 모두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란다.
나에게도, 또 아무개에게도.
방에 돌아와서 나는 이 신선함이 뭔지 깨달았다.
태어나서 이 날을 혼자 보내는 것이 처음이었던 거였다.
가족과 함께이거나, 교회이거나, 친구와 함께였는데.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평화롭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차분하게 새해를 맞이하는 일.
이것, 꽤나 괜찮다.
아, 그래도 내년엔 누군가와 함께였으면 더 좋겠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