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0시에 먹은 치킨과 치킨버거가 다음날 점심이 다 되어가도록 소화가 안된다.
한번에 두세끼를 먹은 효과이다.
살이 찐다고 발발 떨던 깐깐한 아가씨는 아직 한해가 조금 남았는데 일찌감치 저멀리 갔다.
나는 늦은 저녁을 먹으며 행복하구나. 생각했다.
저녁을 먹으며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배나오고 사투리를 쓰며 키는 너무 크면 안되고 성격은 둥글둥글.
사투리 쓰는 이혁재? 좀 더 욕심을 낸다면 그보다는 선한 눈매?
분명 오랫동안 고수해온 나의 이상형이다.
"주위에 그런 사람 있는데 만나볼래?"라고 물었을 때,
나는 멈칫했다.
나의 이상형은 어느 시점을 통해 서서히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뚜렷한 게 없어졌다는 게 더 맞겠지만 . 어쨌든 사투리 쓰는 이혁재에 목을 매지는 않는다.
친구는 웃자고 한 말인지 내 말이 진심인지 밝히겠다는 듯이 자꾸 재촉했다.
얄미운 재촉 덕분에 과거-거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졌음을 절절히 느꼈다.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못챘는지 자꾸만 만나보라고 하니 홧김에 만나볼까 하다가,
그것은 선한 이혁재님에게 실례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일.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일.
<나, 객관적, 보다, 지금, 여기, 집중>
모르는 단어는 하나도 없는데 참 모르겠는 말들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자꾸 하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흘려들었다.
근데 어제 치킨을 먹다가, 뭔가 지금-여기를 깨달은 것 같기도 하다.
과거-거기에 눈을 두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나는 달라져 있는데 내 변화의 속도도, 이유도, 중요성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그랬던 적이 있어'라는 말 한마디만 있어도 그것은 진실이 되지만
나는 종종 그게 과거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의미를 조금을 알 것 같았다.
아, 내가 치킨을 먹고 있구나, 치킨에서 오래된 닭냄새가 나는구나.
가지고 가서 따질만큼 나는 당차지 못하구나. 깍쟁이는 절대 아니구나.
이제 야밤에 치킨 먹어도 덜 불안하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구나.
이제 나는 몸보다 마음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구나.
그렇지만 살이 찌는 것은 싫지.
다음달에는 운동을 시작해볼까.
그리고 지금은,
이혁재도 정우성도 내 머리에는 없구나.
공부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