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친구의 서류전형 합격에
공무원을 하겠다고 마음을 굳힌 게 무색하게 치솟는 질투라니.
애써 그 친구보다 나은 점을 헤아리는 나의 추악함에 질리며 일어난 하루가
좋을 수 있다면 그것 조금 이상한거지.
어제 문자해 준다던 임용직은 결국 문자가 없었다.
이깟 임용직... 이쪽에서도 안하겠다고 어제 마음을 굳혔는데 이 수치스런 기분은 뭔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떤 아집에 사로잡혀 살지 않았나 싶다.
학창시절에는 예쁘고 발랄한 학우를 '양아치'로 여기며 위안을 얻으려 들고
고3시절에는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가치도 내겐 없을 것이라 믿고
대학시절에는 취업을 하는 학우들은 다 임용직이며 볼 것도 없는 대학출신이 뭘하겠냐고.
그리고 지금에는 한줌 흙만도 못한 아집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비웃고 질투하는 나.
왜 화가 났던가 했더니
나는 나 자신의 그런 한심스런 작태를 보지 못하는
결벽이 발한 탓이었다.
질투를 하면 어떤가.
사람이라면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순간은 언제고 찾아오는 법인데.
그 순간에 나 자신을 두둔해 주고싶은 그 마음이 뭐가 그리 나쁜가.
한심하면 좀 어떤가.
어차피 한심이라는 기준 자체도 나 스스로 세운 감옥이다.
우울에 빠져 한숨을 쉬면 어떤가.
그저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는 것도 성장이다.
나는 그래서 막연히 '좋은 날이 올 것이니 낙담은 이르다' 라던가
'잘 생각해보면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라는 서투른 말은 싫다.
누군가 나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저 슬픈 순간에는 최대한 고민하고 괴로워 해보라는 말을 하고싶다.
그렇게 울고 짜고 하고 기운을 빼다보면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당신을 움직여줄 것이다.
어줍잖은 종교인같은 말이지만 정말 그렇지 싶다.
누군가 그러지 않던가. "신은 슬픔을 견딜 수 있는 이게게만 슬픔을 주는 것이라고."
순간에 충실하자.
이게 오늘 느끼는 교훈이지 싶다.
흑.... 비담이 죽었어...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