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사야 하는데!"
매년 여러 경로를 통해 다이어리가 생기지만, 2009년의 다이어리는 상당히 중요했다.
노트처럼 크고 두꺼운 것은 나중에 무거워서 잘 안들고 다니게 되니까, 나의 분신처럼 붙어다닐 얇고 실용적인 다이어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특별히 쪼갤 것도 없는 용돈을 쪼개 다이어리를 샀다.
나와 함께 그렇게 일년을 보낸 그 다이어리가 지금 12월 페이지를 남겨놓고 있는 것을 보니 코 끝이 간지러웠다.
평소 계획적으로 살지 않는 편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나는 그 해의 다이어리를 빼곡히 적었다. 다이어리를 쓰는 일이 매년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12월까지 성실하게 쓴 다이어리는 기념할 가치가 있는 것 같아 버리지 않고 모아두게 된다. 그렇게 모은 것이 올해 것 가지 해서 4권이다.
올 한해를 거꾸로 넘겨 보았다. 맨 앞장에 나는 '꿈을 향해 가는 2009'라는 낯가려운 문구도 새겨놓았다.
2008년의 내가 너무 멀게 느껴지니다.
2009년의 내가 너무 가짜처럼 느껴지는 것도 같다.
다이어리를 덮고, 기승전결이 또렷한 소설책 한권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봄에 나는 어디서 뭘 했던가, 여름은 어떤 마음으로 보냈는지, 가을에는 무엇을 수확했으며 겨울을 맞을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는지 들여다 보았다. 정말이지 2009년은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한해를 보내면서 매순간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어느 연애소설에도, 성장소설에도, 역사 교과서에도, 남들에게도 벌어지지 않는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고 돌아보니,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흔하고 뻔한 사건들일 뿐이다.
다들 질척거리며 사는데 혼자만 대단히 큰 산을 넘은 듯 유난떨지는 말자고 몇번이나 엄살을 경계했지만, 오늘의 비현실감은 엄살도 유난도 아니다.
그리고 이 비현실감은 나만의 것도 아니다.
꿈 같은 현실인지, 꿈 같은 과거인지 모를 어떤 변화 속에 다들 12월을 믿을 수 없어했다.
"벌써 12월이야!"
나는 2010년 에도 돈들여서 얇고 실용적인 다이어리를 사려고 한다.
한 해 정리가 너무 빨랐나. 느닷없이 대청소를 하겠다고 어제 부산을 떨다가, 어제까지는 필요 없어서 버렸던 자료가 오늘 갑자가 가장 필요한 자료가 되었다.
쓰레기차는 오늘 아침에 떠났을테고.
새해에는 좀 더 신중하게 살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