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제가 예전에 가졌던 생각 중에 가장 참담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20대 후반에 일어났습니다. 다름아닌 첫 봉급을 받은 날이었는데..그 때의 봉급 액수는 약 25만원쯤 되었을 겁니다. 금방 계산이 나오더군요. 넉넉잡아 60세까지 버는 걸로 보고 25만원*12개월*30년=?..계산하실 거 없습니다. 그 때 제가 계산해 봤으니까요. 9천만원 입니다. 그 때 아파트 한 채 값이 서울에서 제법 좋은 걸로 1억 쯤 했을 겁니다. 그 때 제가 느꼈던 참담한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내 60 평생의 목숨값이 달랑 집 한 채 값이 안 된다니??
그래서 어떻게 된 줄 아세요? 사람의 머리는 거의 돌에 가깝다는 것을 ^^ 석달 후에 느꼈지요. 회사로부터 봉급을 2만원 인상 받았으니까요. ^^ 다시 한번 이번에는 진짜 차돌이란 것을 알았던 것은 ^^ 10년 지난 후였습니다. 그 땐 아파트를 하나 장만했거든요. 그 이후로는 그런 계산 절대 안하기로 했습니다. 가끔 그런 계산을 하게끔 하는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용케 벗나가지 않고 잘 견뎌왔고, 지금은..인간의 계산으로는 절대 자신의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므로 부단히 노력할 것과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대부분이 가진 가장 몽매한 사연이 뭐냐 하면.. 단 하나의 자신만을 위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의 가장 폐혜인 자아상실에 이르게 되는 첩경이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삶이란 무의식적으로 돈이나 행복 따위를 직접적 목표에 두게 되는데.. 이는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통상 어떤 일을 하다보면 정확하게 그 일의 결과로써 돈이나 행복을 얻게 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것을 얻게 됩니다. 결과는 그 일에 대한 성취인 것이고요. 그런데, 그 과정을 목표로 삼다니요? 그것은 바로 나의 목표를 자아상실에 두는 것과 같은 결과를 도출하게 됩니다.
간단한 일례를 하나 들지요. 이러한 경우입니다. 어느 날 친구와 길을 가다가 쇼윈도우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되는 옷을 한 벌 보았습니다. 나도 입고 싶고 친구도 입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딱하게도 나는 그것을 살 돈이 있고 친구는 그 돈이 없습니다. (세상은 항상 이러한 부조리와 불합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통하여 행복을 얻어야 할까를 판단하여 실행해야 될 때, 가장 먼저 생각하고 추진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여기서 경제원리와도 같이, 동일한 가치로 가장 확장된 다른 가치를 얻는 게 순리라고 봅니다. 세 가지 경우 쯤으로 나눠지겠지요. 자신이 그 옷을 사 입는 것과 친구에게 사 입히는 것, 그리고 내가 사서 둘이 번갈아 가며 그 옷을 입는 겁니다. 아마 자신에게 불편함을 주는 강도는 앞의 저 순서대로 강해질 겁니다. 자신이 자신의 옷을 사 입는 것은 그저 동물적인 본능일 따름이며 그리곤 이내 그 동물적 속성에 한탄하게 되는 거죠. 다시 말해, 좀 더 상위 행복이란 나 자신의 불편함과 피곤함을 감수하는 데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은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성립되는 것이죠. 어때요? 어차피 죽을 거지만, 그 실험.. 해 보고 싶지 않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