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깊이에의 강요'
보통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 중에 "좀머씨 이야기"나 "향수"를 처음 읽기 시작하는데 나는 우연히 이 책부터 읽기 시작하였다. 이 책에는 여러 단편들이 있는데 그 중 책의 제목과 같은 "깊이에의 강요"가 나를 강하게 붙잡았다. 그 후, 그에게 빠져들어 국내에 번역된 그가 쓴 소설들과 시나리오를 모두 읽게 되었다(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향수,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깊이에의 강요"에서는 비평이 받아드리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놀라운 영향을 줄 수 있는 지를 상세히 표현하고 있다. 단지 원인(주인공의 작품에 대해 깊이가 없어 보인다는 비평)과 결과(주인공의 자살)만 보면 전혀 인과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조합이지만 쥐스킨트는 이를 가능하게 한다.
그의 다른 소설인 "비둘기"에서도 한 나이든 은행경비원이 우연히 날아들어온 비둘기를 본 후 나중에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다는 비슷한 내용인데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이 충분히 그런 생각(자살)이 들 수도 있겠구나라며 감정이입을 느끼게 한다.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상황설정이 너무나 구체적이며 사실적이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책 읽는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지은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글 속에 변형된 그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깊이에의 강요"에서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힘들어하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려고 하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일부를 느낄 수가 있다.
추신: 창작심리에 대한 연구에서 보면 성격적 문제가 창의력을 돋우는 동기가 된다고 한다. 즉 불안하고 우울하거나 소외받은 자, 또는 긍지가 낮은 자에게 있어서 창의력은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주고, 대인관계를 피하는 한편 세상과의 소통을 높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