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빵가게 재습격'을 읽고
무라카미 하루키(1949년생)에 대해서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스푸트니크의 연인"등을 썼으며 현대 젊은이들의 상실감을 잘 표현한다는 정도가 나의 앎의 전부였다.
며칠 전 신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빵가게 재습격"이라는 단편집이 최근에 출판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었다. 때마침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중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를 거의다 읽어갈 쯤이었다.
나는 책을 꼭 사지 않아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서점에 간다. 그냥 서점에 있으면 느낌이 좋다. 어떤 책을 읽어볼까하는 기대감과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채워준다는 생각때문인가?
어제도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보다 토요일 오후에 일을 하고 있으니 머리도 무겁고 "내 머리를 맑게 해줄 수 있는게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서점이나 가볼까하는 마음에 자주 가던 서점에 들렀다. 서점을 이리저리 다니며 조금씩 읽던 책도 보고 요사이 나온 책은 어떤 게 있나보던 중 "상실의 시대"가 보였다.
"아, 맞아! 무라카미 하루키의 "빵가게 재습격"을 읽어 보기로 했지"
그런데 막상 찾으려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있을텐데. 드디어 다른 책 밑에 있는 그것을 발견하였다.
생각난 문장 하나: 우리 책을 본 후 제자리에 놓도록 하죠.
서론이 길었군.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러시간에 걸쳐 읽은 그의 단편들(6편)이 내 마음속에 싫지 않은 허탈감과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알 것도 같은 궁금증들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소설(교보 문고 홈에서 그의 이름으로 찾아진 책만해도 51권이다)을 읽은 것이라고는 이 한권밖에 없어 그의 글들이 주는 느낌을 전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독자를 그의 글 속에 참여시키려고 하는구나라는 느낌이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독자에게 어떤 것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읽다보면 독자는 점점더 궁금해진다. 또한 그 궁금증을 "그것은 이것이었다"라며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의 글 속에서는 여러 실마리들을 통해 궁금한 내용을 독자들 스스로가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물론 독자들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지만 이 소설의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해 독자는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다.
그의 소설은 예전에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았던 미스테리를 들었을 때의 느낌과 약간 달랐다. 그 미묘한 차이는 비록 그의 글에서는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았지만 알 것도 같은 느낌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분! 그의 글을 읽으면서 싫지 않은 허탈감과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알 것도 같은 궁금증들을 느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추신: 나는 지금 그 궁금증을 나만의 생각으로 채워가고 있다. 물론 채우지 않아도 그 빈자리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