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이슬비가 은은히 내리는 이 아름다운 가을날.
잠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시간에 쫓기고 쫓겨 언제나 자세히 보지 못했던 가을하
늘. 구름이 끼어있기는 하지만 그 사이로 문득 문득 보여지는 그 곳이기에 더 아름다
운 것인가 봅니다.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들어가면서, 배우는 것은 더 많고 아는 것도 더 많아졌지만 얻
는 만큼 참 많은 것을 잃은 것 같습니다. 비록 어리고 철이 안 들어 말썽만 피우던 그
때이지만 참 좋은 날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나도 그 때의 그 순수한 낭만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예전엔 따뜻했던 손도 이젠 차가워지고, 어머니의 어깨도 안 되었던 작은 키가 이젠
어머니와 비슷해졌습니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세월 속에 묻혀버린 어린 날의 그 소중한 추억들을 다시 찾고 싶습니다.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던 그 잔잔한 종소리가 울리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몇 개월 전, 가장 친한 친구와 싸웠습니다. 사소한 일로 우린 몇 달 동안 사과하지 않
고 서로를 욕하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난 솔직히 친구가 밉지 않았습니다. 4년이 넘게 키워 온 아름다운 우정이 순
식간에 깨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방학이 끝난 후에도 그 친구는 여전했습니다. 솔직히 화가 났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하여 그 따위 행동을 하는 친구가 매우 미웠습니다.
증오했습니다.
얼마전 전 편지를 썼습니다. 이젠 끝내자고 했습니다. 더 이상 서로를 미워하며 험담
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직도 여전합니다.
정말 밉습니다. 솔직히 전 그 친구가 생각하는 대로 자존심도 없고 줏대도 없습니
다. 그래서 항상 남에게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를 처
음 만났을 때부터 난 힘들지 않았고 더 이상 무시당하지도, 이용당하지도 않았습니
다.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난 잃었습니다.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습니다. 항상 옆에 있었던 일상생
활의 한 부분과 같았던 그 친구와 헤어진 후, 난 다른 친구와도 멀어졌습니다. 너무
눈물이 납니다.
오늘,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그 애 얼굴을 그려놓고 저주를 막 퍼부을
거야."
다른 아이들도 나보다 그 친구와 함께 합니다. 난 나 스스로 나를 멍들게 하고 상처
입게 하며 병들어 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많이 힘듭니다. 내가 좀 더 많이 생각했더라면, 내가 나의 고집을 조금만 더 꺽었
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요.
난 변하고 그 변함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고 또 병들어가는 건가 봅니다.
진정한 친구가 없다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외로울때가 많습니다.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자존심도 없고 줏대도 없고 용기도 없고.. 그 친구는 후회한 적이 있을까요. 나랑 헤
어진 것을.
아마도 그 친구는 내 사진을 찢으며 내가 준 편지를 찢으며 나를 미워하고 있겠지
요. 모두가 꿈꾸는 이 시간. 오늘따라 잠은 오지 않습니다.
비는 그쳤는지 밖은 조용합니다.
이젠 익숙해지겠지요. 이 외로움에.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야 할 험난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것 입
니다. 그 동안 그렇게 힘들었던 일도 행복이라 생각하며 참고 견뎌왔던 나인데 이 외
로움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직 어두운 밤...
새벽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신비스러운 고요함 때문이랍니다. 아침이슬이 맺는 그
아름다운 새벽까지 기다리려고 합니다. 한 번쯤은 이렇게 새벽을 기다리며 밤을 새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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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행복하세요.
작가를 꿈꾸는 13살바기 효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