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승합차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승합차를 갖고 사는 이유에 대해서는 언젠가 한번 간략하게 언급했지 싶다. 다시 한번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도록' 짚고 넘어가자면, 실용성이 클 뿐만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도 퍽 요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승합차를 갖고 산다. 어쩌면 평생 동안 승합차만을 고집하며 살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가난한 살림에도 차가 있는 덕분에 비교적 자주 덕산 온천엘 간다. 한 달에 서너 번은 가지 싶다. 가까이에 있는 수많은 대중 목욕탕을 외면하고 굳이 시간 쓰고 돈 들이며 고생스럽게 70리나 떨어진 덕산 온천엘 가는 이유는 대략 서너 가지다. 우선은 올해 75세인 어머님이 온천 목욕을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노인 건강에는 온천 목욕이 좋으리라는 생각 탓이다. 다음으로는 아내의 발톱 무좀 탓이다. 로푸로스라는 비싼 약으로도 치유가 안되는 아내의 미운 발톱은 온천물에 닿으면 일시적으로나마 상태가 주춤하는 모양이다. 군대 생활 삼 년에 월남까지 갔다온 나 같은 남정네도 두 발이 멀쩡하건만 예쁘고 고와야 할 여자 발에 무좀이라니, 내 원 참….
마지막 이유는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해미에서 물을 긷기 위해서다. 차가 승합차인 덕분에 물통을 무려 열서너 개씩이나 싣고 다닌다. 우리집만 먹는 게 아니라 여러 이웃집들과 나누어 먹기 때문이다. 그 맛좋고 깨끗한 물을 어떻게 나만 먹을 수 있나. 내 작은 수고 덕분으로 열 집 이상이 평균 일주일 간격으로 4수(生水 藥水 肉水 聖水)를 마시고 산다.
그러니 내가 덕산 온천을 다니는 수고에는 봉사적 성격이 결부되어 있는 셈이다. 일단은 가족을 위한 수고다. 가족과 함께 다니기에 한 달에 서너 번씩 그런 수고를 하지, 나 혼자 다닌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목욕을 하다 보면 종종 태안이나 서산의 아는 얼굴과도 만난다. 그때마다 내가 꼭 묻는 게 있다. 혼자 왔느냐는 질문이다. 혼자 왔다고 하면 지나가다 들렀느냐, 일부러 넘어 왔느냐 묻는다. 일부러 혼자 왔다고 하면 그럴 사정이 있을 터임에도 괜히 미워진다.
목욕을 하면서 내가 괜히 신경 쓰는 일 하나는 물을 세게 틀어 놓고 앉아서 때를 닦는 사람이 없나 살피는 일이다. 물을 조금씩 나오도록 해 놓으면 좋을 걸 갖다가 마구 넘치도록 해 놓고 때를 닦는 사람을 보면 육신의 때보다도 마음의 때부터 닦아야할 사람으로 보인다. 내가 직성을 참지 못하고 다가가서 물을 줄여놓아주면, 멋적어 하거나 미안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괜히 인상을 쓰는 사람도 있다. 젊은 사람 같으면 내가 물을 줄여놓으면서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수월한데, 나이 든 사람한테는 한결 조심스럽다. 언젠가 한번 그 일 때문에 목욕탕 안에서 시비가 붙었던 일을 잘 기억하는 탓이다.
그런데 어제는 특별한 일이 하나 있었다. 팔순이 넘어 보이는 한 노인이 목욕을 하는데 계속 물을 세게 틀어놓고 있어서 나는 일단 미운 생각이 들었다. 저 나이에 이르도록 물 아끼는 마음 하나를 못 배우고 살았나 싶고, 평생을 자신만을 위해 산 노인으로만 보였다. 그런데 한 중년의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노인의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 드리는 것이었다.
유심히 그 광경을 보다가 내가 다가가서 물을 줄여놓으니 중년의 사나이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슬며시 부자간이냐고 물으니 그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런 아들은 둔 것만으로도 이 노인은 성공적인 삶을 살은 것이 분명해…. 그때부터 나는 몹시 즐거워지는 마음이었다. *
(1998년 <나눔의 샘>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