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넘게 알아 온 친구가 있다.
한때 나의 전부를 다해서라도 지켜주고 픈 맘이 들게 하는 녀석이었다.
법정스님이 말했던게 이런것이였을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보다도, 겨울밤처럼 고요히 가라앉는 침묵이 훨씬 더 편했다. 침묵이 가장 깊은 언어라는 것을 , 그애와 함께 있음으로 해서
깨달았다.
사람들은 우리 둘 사이를 기이히 여겼다.
어떻게 한마디 말도 없이..눈빛만으로 대화할수 있냐고.
그러면 우리 둘은 공교롭게도 풋사과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 뿐이었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맘속으로 나직히 중얼거리곤 했다.
'녀석의 동공속에 비치는 알몸같이 낮아진 나의 모습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나는 오랫동안을 한참이나 그말을 홀로 씹고 또 씹어보았던 것이다.
녀석과 나는 너무나 달랐다.
혹시, 가물어서 손으로 훔치기에도 안타까운 메마른 흙을 만져본 적이
있는가? ... 나란 아인, 너무나 메마른 ,그래서 한방울 눈물조차도
차라리 반가웠던 사막이었다. 하지만 그애는 내가 무심코 던져 버린 말에도
눈물을 글썽거리던, 어린왕자의 여자친구쯤 될만한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 였다. 우린 서로를 부러워했다. 눈물이 너무 많아서 자신이 싫어
진다던 너는, 메마른 나를... 이제는 너무도 메말라버려 사람하나 찾아오지
건조한 나는, 촉촉한 너를..
우린 그렇게 서로의 눈동자 속에서, 서로를 부러워하고 사랑했었다.
나같은 녀석에도 참기 힘든 울음이 터져나올때,
가장 힘이 되었던 건 수화기너머로 들려오는 녀석의 목소리였다.
녀석이 가장 아끼는 다롱이-애완견-가 죽었을때
한밤중에 나를 깨웠던건 다름아닌, 녀석의 울음썩인 목소리 였다.
............
우린 정말로 그랬었다.
그래..\"그랬었지.\". 나의 말은 .....나의 이야기는...... 애석하게도
모두다 과거형 시제를 써야만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어디서부터였을까.
이젠 더이상 그친구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 눈속에서 나를 느낄수가 없다. 알몸처럼 벗겨진 ..그래서 가장 솔직했고,
가장 낮아질수 있었던 나의 모습을 말이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한때 전부를 걸고 싶을 만큼 소중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빨갛게 타다 말은
담배꽁초처럼,, 쉽게 버릴수 있나보다. 한땐 나의 전부였던 것을.
하지만..아직.. 내 눈속엔 그림자처럼..녀석의 모습이 나를 울린다.
가끔씩, 이렇게 추적추적 가을비가 오는 날이면
그 겨울.. 어둠속에서 내리던 시리웠던 그 비가 문득 떠오른다.
비를 맞으며,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길을 걸으며 우린 대는되로,
노래를 불렀었다.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썩인 그 노래의 후렴구만이
비와 함께 내려타다가,...나의 눈에서 잠깐 얼핏하고 멈춘다.
이제야...나는 조금식 녀석을 닮아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