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겨울이 지나 봄이 왔나 했더니 어느새 여름이 되고 가을이 지나 다시 겨울이 돌아왔다. 나와 창수의 대학 생활도 이번 겨울이 마지막이었다. 4년 동안 열심히 소설을 썼으나 무엇 하나 이뤄 낸 것 없는 창수는 요즘 취업하기 위해 회사를 알아보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싶었다. 나는 대학 4년 동안 별만을 보고 살았다. 하지만 별은 아무것도 주질 않았다. 물론 처음 별을 좋아했을 때부터 별한테 무엇을 바란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냥 별이 좋았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현실이 존재한다. 아무 이유없이 별이 좋다고 해서 마냥 별만 보고 살 수는 없는 현실이. 사람에게는 적어도 자신의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돈이 필요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별은 너무나 멀리 있어서 나한테 그것마저도 주질 않는다. 결국 나도 창수처럼 젊음의 특권인 열정을 버려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을 보러 갔던 창수가 돌아왔다.
“면접은 어땠어?”
“그저 그랬지, 뭐. 솔직히 이번에도 별로 자신은 없어.”
“정말 이렇게 끝내는 거니?”
“뭘?”
“넌 소설가가 되고 싶어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재능이 없나 보지. 4년 동안 그렇게 노력 했는데도 안 되는 걸 보면. 이젠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넌 앞으로 어떡할 거니?”
“응?”
“너도 마냥 별만 보고는 살 수 없을 거 아냐?”
창수의 말대로였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글쎄, 난 아직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생각해야 할 거야. 이번 겨울방학이 끝나면 골 졸업이니까.”
창수는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오더니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불 꺼도 될까?”
책상 앞에 앉아 별자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 내게 창수가 물었다.
“응. 스탠드 키면 되니까.”
창수는 불을 껐고 나는 스탠드를 켰다. 창수는 10분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방안은 조용했고 그래서 나는 창수가 자는 줄 알았다. 그런데 창수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 여자 돌아올까?”
“응?”
나는 고개를 돌려 누워 있는 창수를 보았다.
“작년에 여기서 군고구마 팔던 여자 말이야. 돌아올까?”
“그럴리 없겠지. 근데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으니까. 취직을 하게 되더라도 마지막으로 쓰고 싶었던 소설을 쓰고 끝내고 싶어. 그 여자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 젊은 군고구마 장수가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창수보다 내가 훨씬 더 컸다. 겨울이 다시 돌아오자 나는 혹시나 오늘은 그 여자가 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매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은 나하고의 사이에 이렇다 할 추억 하나도 없는 그 여자를 생각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여자와 같이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있어 겨울은 사랑의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