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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들을 보면 계절이 가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겨울의 별들은 찬란하게 빛났다. 이상하게 그 군고구마를 파는 젊은 여자와 겨울 별들을 같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었다. 별 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항상 그랬듯이 군고구마 장수를 보게 되었다. 다른 날과는 달리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남자 아이와 같이 있었다.
“군고구마 3000원 어치요?”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봉투에 군고구마를 넣어 주었다.
“누구야?”
남자 애가 물었다.
여자는 핸드폰에 문자를 찍어 동생한테 보여 주었다.
“단골 손님?”
남자 애는 무척이나 기쁜 듯이 말하더니 나를 돌아다 보았다.
“우리 누나가 하는 군고구마 정말 맛있죠?”
“응. 근데 누나야?”
“예.”
“동생이었구나.”
“예?”
“아. 아니야. 여기 돈.”
나는 남자 아이한테 돈을 건네주고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데 남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누나를 좋아하는 거야.”
“......”
“그게 말이 돼? 세상에 군고구마가 좋다고 군고구마를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사러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
“......”
여자의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는 바로 앞에 있는 동생한테도 하고 싶은 말을 핸드폰 문자로 찍어 보여 주는데 내가 여자의 말을 알아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동생의 물음에 무슨 대답을 하는지 여자의 핸드폰을 보고 싶었다. 나는 갑자기 핸드폰이 사고 싶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창수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었다. 제목은 군고구마 장수는 여름에 뭐 할까? 였다.
“요즘 핸드폰 얼마나 할까?”
“핸드폰? 니가 웬 일이냐? 핸드폰을 다 사려고 하고.”
“그냥 좀... 근데 정말로 그 엉터리 제목으로 글을 쓰려는 거야?”
“엉터리 제목이라니? 신선하고 좋기만 한데.”
“난 모르겠다. 이거나 먹어.”
나는 봉투에서 군고구마 하나를 꺼내 주었다.
“그 여자 남동생이 있더라고.”
“목적이 뭐야?”
“응?”
“그러니까 내 말은 군고구마가 좋은 건지 아니면 그 여자가 좋은 건지 그걸 묻고 있는 거라고.”
나는 창수 녀석이 무척이나 날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그 녀석은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 대체적으로 그 녀석은 말도 안 되는 남의 말도 곧이 곧대로 들을 정도로 허술해서 사람들한테 잘 속아 넘어가지만 가끔 그 녀석은 무척이나 예리할 때가 있다.
“그거야 당연히 군고구마지. 내가 군고구마 매니아인건 너도 잘 알잖아?”
나는 내 감정을 숨기려고 거짓말로 둘러댔다.
“그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사흘에 한 번꼴로 군고구마를 사 오다니. 게다가 니가 여자 얘기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고.”
“내가 여자 얘기를 한 게 처음이라고?”
“그래? 넌 내가 널 처음 만난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어. 넌 별 밖에 몰랐잖아? 그 당시 남고생들의 우상이었던 여배우 이름조차도 몰랐으니까. 근데 그 여자 이뻐?”
“응?”
“어쨌든 잘 되길 빌게. 넌 진심인 거 같으니까. 난 라면 끓여 먹을 건데 넌 안 먹을래?”
“아니. 난 됐어. 군고구마 먹으면 되니까.”
“하긴 군고구마는 몇 개만 먹어도 배부르지. 근데 겨울이 지나면 어떡할 거야?”
“응?”
“겨울이 지나면 군고구마 장수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그랬다. 겨울이 지나면 군고구마 장수는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겨울이 지나면 여자는 떠날 것이다. 그렇게 좋아한다는 말 한 번 못해보고 여자를 떠나 보내야 하는 것인지. 왠지 가슴 한 켠이 저렸다.
“겨울은 다시 돌아 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응?”
“그 여자.”
“......”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정말로 그 여자가 다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겨울이 지나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져서 떠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다시 겨울이 와서 그 여자가 돌아와 주면 가슴이 설레일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