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생각
살면서 곤혹스럴 때가 꽤 있다.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을 만날 때, 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에 맞대어 질 때, 등등 말로는 부족한 곤혹스러움들.
화장실에서 곤혹스러울 때가 꽤 많다.
출입문과 벽에 가득한 낙서들.
거개는 비속한 성에 관한 잡설과 낯붉힐 이야기들과 그림들이 가득하다.
아마도 섹스와 배설에 관한 한 유사한 쾌락에 근거한 거의 반사적인 행위자들의 무의식적 표현일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성에 관한 낙서가 아니다.
자뭇 심각한 삶과 죽음에 관한 노트를 접할 때, 곤혹스러움은 극에 달한다.
"죽음의 현존을 알았을 때 자유로와진 삶의 의미를 알았다"
"죽음을 경험한 자는 없다. 죽음에 대한 모든 언어는 기만이다. 그만 사기쳐라"
"어설픈 실존주의는 차라리 공허한 형이상학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도대체가 배설을 하면서, 이렇듯 진지해 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낙서를 보면서 그렇군 하고 동의하거나, 아니야 하고 반항하는 내 자신의 의식도 믿기지 않는다.
물론, 배설은 살아있음의 중요한 징표이고, 배설을 경험하는 주체는 그 순간 삶의 온전한 실재를 본능적으로 느끼기에, 자연스런 의식의 반응로 죽음과 삶을 연유할 수 있다고는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이 이렇다해도 건강하고 유뫠한 배설을 위해서는 뒷마무리가 찜찜하게 이런 낙서를 대한다는 것이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다.
나와 같은 범인은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화장실 철학자들에게 감히 그러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그들 나름의 철학함의 고유한 이 신성한 공간을 곤혹스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금지의 공간으로 바꿀 용기가 내게는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앞으로 수없이 곤혹스러울 것 같아, 또한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