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音之交
1. 친구와 함께
#누군가와 함께 있다.
대부분은 피곤한 일이다. 부모와도 언제나 피곤한 기억이, 즐거운 기억보다 많다. 누구나 그렇다고는 믿고 싶지는 않은 일이다. 그에게 해당하는 것이라 일단 쟁여두고, 그가 누구와 함께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를 보자.#
입이 헤 벌리기가 일쑤다.
진지함이란 도무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그는 누군가와 앉아 있다.
간혹 욕설과 되지도 않는 말투로 눙쳐대고 있다. 대화라는 것이 오고가긴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 어떤 말이 튀어 나오고, 다른 누군가가 어떤 뜻으로 듣건 중요하지 않다는 몸짓으로 그져 히히 거릴 뿐이다.
"친구라고 나는 그를 부르고, 그도 그렇게 나를 부를 게다. 친구라, 참 어려운 관계를 뜻하는 이 말을 나나 그나 너무 쉽게 주어 삼키고 생각하고, 주절대고 있군. 도대체 나는 그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아니 정확히는 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와 관계된 내 자신을 위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그는 내 앞에서 언제나 인격으로 포장된 물질이고, 사물이고, 물건이다. 자연도 아니다. 자연이라니, 인간인 이상은 누구나 자연임은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와 나는 친구라고 이렇게 마주 앉아 있고, 커피를 마시고 대화라는 거짓을 행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래도 생각해 볼 일이다."
2. 멍뚱그리 앉아 있으며.
혼자 앉아 있다.
간이라도 빼줄듯 얼쳐댔던 상대는 벌써 안 보인다.
멍뚱그리-그게 가장 좋은 표현이다.- 그는 앉아 있다.
발 밑에는 수북한 담배, 그보다는 재가 어스르하게 흩어져 있다.
"나의 인간관계란 피곤이다. 지친다. 사람들 말을 듣고, 답하고, 나를 말하고 들어주라 하는 식의 관계는 괴롭다. 그렇다고 내가 자폐에 겨워 인간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인간을 찾고, 그리워 한다. 인간 관계의 한 단면, 그 핵심을 여실히 드러내는 친구, 우정이라는 것에 생각을 대어 볼까? 친구라...
물론 나는 친구가 여럿 있다. 여러 용도로 잘 갖추고 있는 편이다. 술 마셔줄 친구, 커피 마셔줄 친구, 산에 갈 친구, 바다에 갈 친구, 같이 그저 놀 친구, 시간을 때워줄 친구 등등... 각기 어울리는 장소와 화제를 들고 맞이할 친구는 여럿이다. 그런데..."
어릿하게 해가 비스듬하다.
붉게 누리를 온통 칠해 놓고 있다.
오지게도 그 붉은 오줌을 싸 놓아 버렸다.
"그래, 잊고 있었군.
옛날 중국에 거문곤가 가야금을 기가 막히가 잘 타는 사람이 있었다 했다.
그는 평생을 걸쳐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탄금술과 음악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한탄했다고 했다. 그런 어느날 그의 음악을 듣고 훌륭하다고 좋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후로 그 연주자는 그 사람과 더불어 자신의 음악을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죽자 그는 현을 몽땅 끊고 산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이제 세상에서 자신의 음악을 들어줄 이가 없기에, 더 이상 연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면서.... 그리고 훗날 사람들은 그 둘의 친구됨을, 우정을 일컬어 知音之交라 했다.
그렇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함부록 목숨을 내놓을 정도록 자신있지는 못하다. 죽어도 상대를 위해서는 목숨을 담보로한 우정을 과시할만큼 어리석지 못하다. 오히려 가끔은 너무 현명하다. 계산이 밝고, 이재에 밝아서 현명한 것이 아니다. 빤히 제 잇속을 차린 거짓으로 눙쳐대고, 금방 들통날 거짓말로 상대를 속인다. 그러면서도 상대는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기꺼이 거짓과 얄궂은 이기를 떨어대서 그렇다.
현명하다해서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다. 서로가 부족하기로는 말하자면, 형님을 양보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가 부족하기에 만족스럽다. 부족을 서로가 보완해주거나 그 기움을 보충해서가 아니라, 그대로 그 부족이 서로에게 편한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인간을 버리지 않고, 관계라는 것을 맺고 살아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의미없는 이 세상에 그래도 의미있는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할 수 있다, 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치고 피곤한 삶에 위로와 위안을 받는 존재가 있다, 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음의 친구인 녀석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고 가슴따뜻한 구석이 있다고 나는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고맙다. 녀석이 녀석인 데로 있어서 고맙고, 나도 나인체로 녀석에게 있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