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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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스름의 저녁에
오지게도 해는 많이 싸놨다.
하늘이나 구름이나 산이나 할 것 없이 온통 불디 붉은 해의 오줌범벅이다.
어느샌가 눈이 푸르슨한 밤고양이가 어슬렁 대고 있다.
훔쳐보듯이 그를 바라보는 눈에 그는 눈쌀을 찌푸렸다가 살그머니 외면한다.
"저 놈의 고양이가 괴롭다. 저 놈은 꼭 나를 잡아 먹을 듯하다. 나를 잡아 먹어봐야 별 맛이 없을 듯한데... 놈도 분명히 알 게다. 그런데도 놈이 나를 계속 응시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나를 제 놈이 포섭하여 자기화할려고 하는 것이다. 놈에게 있어 종족 번식은 생식이 아니다. 놈은 생식보다 더 빠르고 확실한 종족 번식 방법을 터득했다. 만만한 인간을 포섭하여 자기처럼 고양이로 만들면 된다는 것을."
2. 고양이 앞에서.
고양이는 계속 그 자리에 있다.
그와는 약간의 거리다.
그 간격만큼을 사이렌 같은 바람이 불어댄다.
오슬하게 그는 떨지만, 고양이는 바람이 비껴간다.
"저 눈에 먹혀서는 안되는데, 어떻게든 저 눈을 피하든지, 후벼 파 버려야 하는데... 나는 이렇게 일껏 한다는 짓이 고개를 가로저어 저 눈을 피하고 있다니. 고양이는 생명이 9개라고 했다. 영물이라 했다. 고양이 울음은 갓난애기의 울음을 닮은 것도 영험함의 표지라고 했다. 그런 영물이 나를 계속 응시하고 있다. 씨발, 어떻게 하라는 겐가.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 자리를 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설사 십분 용기를 내어 놈을 쫒는다고 해도 놈은 다시 올 것이고, 그 때는 속수무책이다. 놈은 나보다 빠르고 민첩하다. 게다가 야성에서 물든 놈이니....갑자기 시덥잖은 전생이 상기되는 것은 웬일인가!
내가 고양이로 놈이 쥐로 앙퀴졌던 그 때가 재각인 됨은 웬일인가! 누가 알았겠는가 이리 될 줄을..놈에게 아부라도 하고 싶다..."
3. 자리를 뜨며.
어느샌가 고양이가 없다.
길고 긴 한 숨을 내 뱉는다.
해는 넘쳐나게 싸놓은 그 붉은 오줌을 거두고, 대신 달이 질퍽한 정액을 하늘 가득 싸놓고 있다.
"갔다. 놈이 갔다. 내가 포섭하기에도 같잖은 인간이었나 보다.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뿐이면 어떻한다지, 놈이 다시 나타나면 그 땐 어찌한다? 그 때는 이번과 같은 요행도 없을 터인데...근신하고 집에 콱 틀어 박혀 있어야 하나? 그러나 이도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놈은 나를 찾아내는 예민한 코와 눈이 달려 있고, 그에 어울리는 날렵한 다리가 있다. 내가 어디에 있건 놈은 찾아 오려면 여반장이다. 어찌하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