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백합, 채송화, 맨드라미, 나팔꽃..
기껏 알고 있는 꽃이름들은 흔하디 흔해 어느 꽃집에서도 찾을라면 단번에
찾을 것들...
이런 지천에 깔려 아름다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꽃이름 목록 속에 그러나
누구에게든 나 이런 꽃도 알고 있다고 자랑할 만한 꽃 하나가 있기는 있다.
"나도 바람꽃"
산지의 음지에 나는 다년초, 잎은 3장의 겹잎으로 됨. 미나리아재비과의 다년
초. 숲의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뿌리줄기는 짧고 밑부분에 많은 수염뿌리가
있으며 윗부분에는 비늘조각이 있다. 줄기는 약하고 곧게 서며 높이 20~30
cm이다. 잎은 긴 잎자루가 있고 3출엽(三出葉)이며, 작은잎은 잎자루가 있고
3개로 갈라진다. 잎은 길이 2~4 cm, 나비 1~3 cm로, 갈라진 조각은 다시 결
각(缺刻) 모양으로 갈라지고 톱니가 있으며 앞면에는 털이 없고 뒷면은 백색
이다. 포엽(苞葉)은 줄기잎의 작은잎과 비슷하다. 꽃은 5~6월에 희게 피는데
줄기 끝에 작은 꽃대가 나와 그 끝에 1송이씩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4~5개로
타원형이고 꽃잎은 없으며 수술은 많고 암술대는 위쪽이 굵다. 골돌(뮐)은
3~5개이고 타원형이다. 한국(평북·함남·함북)·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꽃을 실제로 본 일이 없고, 향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이 꽃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족하나마 그 모양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이름 때문이다.
"나도 바람꽃"
"나도 바람꽃"
"나도 바람꽃..."
바람꽃이라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게 충격이었다.
도대체 바람(風)을 얼마나 품었기에, 품기를 원하기에 바람꽃인가,
바람이 불면, 그래 너는 어떤 모양새로 바람을 맞고, 바람을 보내기에 바람꽃인가, 꽃이라면 벌과 나비에 친해야 하고, 그놈들과 어울려야 함에, 나무도 아닌 것이 풍매화적 고고함인가!
더구나 나도 바람꽃이라니, 그러면 너 말고 바람꽃이 있다는 말인데, 네 뭐가
부족해서 나도 바람꽃이라고 그렇게 이름불리워지고 있는가!
하긴 '나도'로 시작되는 몇몇 이름을 알고 있기는 하다.
나도 밤나무, 나도국수나무...
언제나이지만, '나도'로 시작되 는 이름들의 생명은 웬지 불쌍하면서도 안쓰
럽고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기껏 이 세상에 존한다면 당당한 이름붙여져
불리워져야 할 일인데, '나도' 생명들은 명명된다는 것이 겨우 다른 이름들
앞에 나도로, 제껏 그래도 본 이름 붙은 것들 축에 끼인다는 비굴한 존재함
이 드러나서 그렇다.
빌붙어 존재함을 증명받기를 원하는 가련한 그네들의 분투에 화가난다.
차라리 이름을 포기하고, 불리워지기를 포기하지, 왜 기껏 '나도'라는 불명예
를 감수하는지...
심심해서, 혹은 짖꿎은 마음으로 가끔은 길을 걷다 꽃집이라 읽혀지는 간판을
버젓이 걸고 있는 문에 들어서 묻곤 한다.
"혹시 나도 바람꽃 있습니까"
아니면, 분명히 이런 꽃이름은 없지만,
"그러면 혹시 너도 바람꽃은 있습니까"
한 번도 있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고, 대부분은 그런 꽃도 있었냐는 반응들이었
다. 그러나 설사 있다는 말을 들었을지라도, 그리고 내게 그것을 구입할 만한
여유가 있더라도 나는 결코 사지는 않을 것이다. 기를 자신도 없고, 물주며 가
꾸는 동안 내게 불리워질 '나도 바람꽃, 나도 바람꽃'을 내가 견디기 어려울 것 같기에 그렇다...
꼭 '나도 인간, 나도 인간'이라는 내 비굴함을 대속하면서 불리워질 것 같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