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날, 소녀는 충격의 말을 듣게 되었어요.
글쎄..왕자님이 이름도, 신분도 알 수 없는 묘령의 아가씨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었어요. 신비의 베일에 싸여있는 아가씨를 처음 무도회에서 본 후, 왕자님은 소녀와 똑같은 가슴앓이를 하게 된 것이었지요.
그 아가씨는 소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존재였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장막 뒤에서 지켜보았는데, 왜 그 아가씨를 보지 못했을까 소녀는 몹시도 이상했지요.
자신이 모르는 존재를 향한 왕자님의 마음에 상심하여 불면의 나날들을 보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왕자님의 주위를 맴도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지요..
왜냐하면 소녀는 왕자님을 너무나 많이 좋아하고 있었으니까요...
햇빛 화창하고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던 날에, 왕자님은 소녀를 찾아와 새로이 생긴 감정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대요.
"오직 그녀 생각뿐이구나..그녀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이곳이 아프구나..아주 많이."
왕자님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답니다.
"그런가요? 정말..그러신가요? 왕자님...그렇게 많이 아픈가요?"
소녀는 슬픔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왕자님에게 물어 보았어요.
"음. 어쩔 때는 한없이 아리기도 하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두근대기도 했다가 또 찌릿찌릿 저려오기도 하지... 그리고 여기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복잡해지곤 해. 오직 떠오르는 건, 그녀의 모습뿐이니..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어."
이번엔 왕자님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답니다.
소녀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절망감을 느꼈어요..
소녀가 왕자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을.. 왕자가 묘령의 아가씨에게 갖게 되었으니까요.
자신이 아닌..다른 아가씨에게로 말입니다. 그래서 아주.. 많이 슬퍼했답니다.
'저도 그런 걸요..왕자님, 저도 그래요...왕자님이 느끼시는 것처럼 저도 왕자님을 생각하면 그런 걸요...아~ 몹시도 가슴이 아프네요... 당신이 제게 하시는 말씀은 비수가 되어 제 심장
을 헤쳐 놓네요... 아파요..이렇게 아프게 할거면 차라리 제 심장을 가져가세요...그렇게 해주세요..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도록 왕자님이 가져가 버리세요...'
"소녀여, 네 눈에 눈물이 맺혀있구나... 어디가 아픈 게냐?"
소녀의 맘을 모르는 왕자님은 소녀의 눈물을 알 수가 없었던 게지요.
소녀는 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대요.
"왜이리 따끔따끔 거리는지 모르겠어요.. 왕자님...음...음.....눈이 많이 시려요..꼭 마음에 구멍이 난 것처럼요.. 그리고 아파요.. 꼭 마음에 상처가 난 것처럼요.....그리고 괴로워요...꼭 심장이 칼로 도려진 것 처럼요...그렇게, 눈이 시리네요..."
왕자님은 걱정이 가득한 모습으로 소녀의 눈을 들여다보았어요.
"왕자님, 이젠 괜찮아요..눈물로 다 씻어 버렸거든요.. 보세요, 이제 눈물이 안 보이죠?"
"정말! 눈이 시릴 땐 눈물로 씻어버리면 되겠구나..."
소녀는 왕자님의 모습을 바로 보지 못했어요.
소녀는 왕자님을 보면 눈물이 또 흐를까봐, 고개를 깊이 떨구고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대요.
"네.. 왕자님. 하지만 왕자님도 눈이 시릴 날이 곧 오게 될 거예요..눈이 시린 건 눈물로 씻을 수 있지만, 마음이 시린 건 눈물로도 어쩔 수 없는데...그러면 왕자님은 어쩌시려구요. 그녀를 사랑하지 마세요..제가 모르는 그 아가씨만은 사랑하지 말아 주세요.."
빛의 왕자님은 소녀의 말을 듣지 못했지요.. 목소리가 너무나 작았거든요...
"들어보겠니?"
왕자님은 소녀의 찢어지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아가씨에 대한 얘기들을 계속해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녀는 고개까지 끄덕이면서 왕자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대요.
가끔씩 눈이 시리다면서 눈부신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리곤 잠시 눈물로 씻어내기도 했죠.
그러다 또 애절한 미소를 함빡 지으며 왕자님의 얘기에 귀기울였답니다.
소녀는 그날 밤 이후로 매일매일 울면서 잠이 들었대요.
신비의 아가씨에 대한 왕자님의 관심은 날로 커져만 갔죠.. 그러면 그럴수록 소녀는 더욱 외롭고, 더욱 쓸쓸한 사랑을 하였지요..
전할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가슴 안에 담아두고 왕자님의 주위를 맴도는 일..이젠 기쁘지만은 않았답니다.